영화 '살목지'의 주인공인 배우 김혜윤이 '살목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살목지'의 주인공인 배우 김혜윤이 '살목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쇼박스
한밤중 외딴 저수지로 향하는 진입로가 흡사 강남 한복판의 주차장으로 변한다. 내비게이션 앱에 목적지를 '살목지'로 설정한 차량이 117대로 집계된 날도 있었다. 공포 영화 '살목지'의 실제 배경 장소를 체험하려는 이들이 몰리며 생긴 진풍경이다. 흥행 비주류로 밀려나며 설 자리를 잃어가던 공포물이 다시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부흥의 기반은 '도파민'과 '체험'에 열광하는 MZ세대다.
'살목지' 향하는 차가 117대…MZ가 소환한 'K-호러'의 기묘한 부활[TEN스타필드]
물귀신과 저수지 괴담을 소재로 한 영화 '살목지'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대작 없이 조용하던 4월 극장가에서 예상 밖의 선전을 거듭하며 개봉 7일 만에 손익분기점 80만 명을 넘기더니 23일 오전에는 그 2배인 160만 명을 돌파했다.

'살목지'가 일으킨 '무서운' 바통은 이달 24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리고'가 이어받을 전망이다. 신예 배우들을 내세운 '영 어덜트 호러물'인 이 작품은 소원을 이뤄주는 앱 기리고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분투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살목지'의 포스터. 4월 23일 오전 160만 관객을 돌파했다. /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살목지'의 포스터. 4월 23일 오전 160만 관객을 돌파했다. / 사진제공=쇼박스
주목할 점은 공포물이 더 이상 여름을 겨냥한 한 철 장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계절과 무관하게 소비되는 '상시형 콘텐츠'로 변해가는 것. 이는 짧고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MZ세대의 도파민 추구형 소비 패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서사가 복잡하고 긴 호흡의 대작보다, 직관적 공포와 긴장감을 즉각적으로 선사하는 호러물이 이들 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다. 공포물이 굳이 계절감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콘텐츠가 된 것.

MZ세대에게 공포물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선 체험형 놀이로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다. 압도적 공포감을 함께 느끼고 공유하고, 이를 다시 현실의 챌린지로 이어간다. 관객들,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는 실제 살목지를 밤늦게 방문하는 공포 체험이 유행이다. 새벽 3시 '살목지'의 저수지 진입로가 차량들로 가득 차고, '살리단길'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 현상은 공포물이 MZ의 참여형 문화와 결합돼 화제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들에게 공포물은 화면 안의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뛰어들어 즐기는 거대한 '공포 테마파크'도 되는 셈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의 한 장면. /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의 한 장면. / 사진제공=넷플릭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공포물의 재부흥은 반가운 소식이다.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텐트폴 영화들이 제작 및 흥행 부담이 큰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공포물은 참신한 기획과 연출만 있다면 저예산에도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신인 감독과 배우에게는 문 턱이 낮은 등용문이 되고, 배급사는 리스크를 줄이고 관객 화제성을 챙길 수 있는 선택지가 된 것이다.

K-호러의 부활 조짐은 콘텐츠 시장의 주도권이 직관적인 자극을 선호하는 세대에게 넘어갔음을 시사한다. 세련된 은유나 함축보다는 눈앞에 닥친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재미, 그리고 그것을 공유하며 즐기는 '놀이의 가치'가 공포물을 다시 주류의 장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 기묘한 열풍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도 있기에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최근 MZ세대는 차갑고 서늘한 공포물을 '핫플레이스'로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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