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수많은 콘텐츠로 가득한 시대 속 알맹이만 골라드립니다. 꼭 봐야 할 명작부터 기대되는 신작까지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을 추천합니다.
5살에 아역으로 데뷔해 74세에 세상을 떠난 고(故) 안성기는 일생 내내 한국 영화와 함께했다. 한국 영화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그는 이제 영원히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수많은 작품으로 전국민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했던 안성기. 그를 떠나보내며 그의 명작들과 명대사를 다시 살펴봤다.
안성기는 684부대의 훈련 교관 최재현 역을 맡았다. 초반에는 가혹하고 강압적인 훈련관으로 등장하지만 점차 부대원들과 인간적인 유대를 맺으면서, 자신의 임무와 인간적 도리 사이에서 복잡한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극 중 임무가 공식적으로 폐기되고 부대가 해체 수순에 들어가자 분노한 부대원들은 상부의 배신에 절망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섬을 탈출한다. 교관 최재현은 부대원들의 폭주를 막기 위해 "날 쏘고 가라"며 길을 가로막는다. 국가의 명령과 인간적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의 비극, 그리고 부대원들을 향한 마지막 책임감과 속죄의 표현으로, 영화 전체의 비극성을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안성기의 절제됐던 연기가 폭발하는 순간이다.
극 중 박민수는 최곤이 추락한 뒤에도 곁을 지키며 그의 삶을 지지하고 떠받쳐주는 인물이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겪은 인물답게 욕심보다는 사람과 관계를 중시한다. 또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최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라는 박민수의 대사는 '인생은 결국 사람과 이야기로 버텨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며 관객들에게도 위로를 선사했다.
안성기는 김경호 교수 역을 맡았다. 김경호는 법정에서 끝까지 논리와 원칙으로 자신의 무죄와 사법 시스템의 모순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벼랑 끝으로 몰린 지식인이 고립된 투쟁을 펼치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한국 사법 현실의 권위주의와 폐쇄성을 비판한다. 극 중 재판은 석궁 발사 여부와 각도, 현장 상황 등 핵심 쟁점들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흘러간다. 이에 김경호는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며 분노를 터트린다. 이성으로 버티던 인물이 끝내 내뱉는 절규의 순간으로, 정의를 믿었던 한 인간의 분노, 좌절, 고독이 그대로 전해지는 대사다.
안성기는 200여 편의 영화를 통해 때론 일그러진 얼굴로 시대의 잔혹한 이면을 보여주기도 했고, 때론 인자한 얼굴로 따스한 위로를 건네주기도 했다. 생의 마지막까지 연기를 사랑하며 연예계 선후배들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귀감이 됐던 안성기의 안식을 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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