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출연한 배우 박희순을 만났다. '어쩔수가없다'는 25년간 제지회사에 근무한 만수(이병헌 분)가 갑작스레 해고당한 후 재취업을 모색하다 '경쟁자 제거'라는 선택을 하는 얘기. 박희순은 잘나가는 제지회사 반장 최선출 역을 맡았다.

박희순은 선출 캐릭터에 대해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다. 상사한텐 적당히 아부하고 후배들에겐 술도 한 잔 사줄 줄 안다. 그 정도의 집과 차를 가지고 있을 정도면 뒷돈도 좀 먹었을 거다. 그래도 분명 열심히 일하니까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거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출에겐 딜레마가 있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데, 집은 외딴섬의 숲속에 있다. '바비큐 구워줄 테니 우리 집에 와'라고 한들 누가 배 타고 차 타고 산속까지 오겠나. 내면의 충돌이 있는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외로움에 젖어서 SNS에 게시글과 릴스를 올린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조회수는 0이다. '아재력'이 있는데 유행에 뒤쳐지긴 싫다. SNS에 '소리 질러'라면서 올리는데, 그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박희순은 선출이 술에 취한 상태로 머리만 내놓은 채 땅에 묻히는 장면을 특히 신경 써서 준비했다. 그는 "술 취한 연기가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렵다. 연기라는 걸 들통나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는 강도, 어느 순간 깨는 모습까지 철저히 연구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얼굴을 벌겋게 분장하긴 했지만 더 빨개지려고 슛 들어가기 30초 전부터 숨을 참았다.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이게 했다. 얼굴이 빨개지고 눈이 충혈되는 모습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고 최대한 내 힘으로 자연스럽게 만들고자 했다"고 전했다.

박희순은 현장에서 감독의 디렉팅을 소화해내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는 "'미션 수행'하기 바빴다. 내가 철저히 준비해오지 않으면 '멘붕' 오기 쉬운 현장이었다"라며 "어려운 작업을 해냈을 때 희열은 상상할 수 없다. 몸은 고되고 진이 빠지는데 해내고 있다는 희열이 컸다"고 했다.
박희순은 "워낙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니 누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기술 시사 후 의기소침해진 그의 모습에 아내 박예진은 "그렇게 하고 싶었던 박찬욱 감독님과 한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위로했다고. 박희순의 걱정과 달리 그는 영화에 녹아드는 연기를 보여줬다. 이에 박예진이 "엄살 그만 피워라"고 했다고 한다.

팬들에게 지천명 아이돌, 섹시 중년 등의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박희순. 이런 관심이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주냐는 물음에 "아직 그런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악행을 하는 역할은 지양하게 된다.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런 역할을 하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들다.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라고 해도 조금 멀리하게 된다"고 답했다. 직업 만족도에 대해서는 "제가 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오래 할 줄은 몰랐다. 연극을 할 때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한 단계 한 단계 거쳐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는 게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영화 속 만수처럼 실직하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박희순은 "시조(차승원 분)처럼 빨리 다른 일을 찾아서 가족을 먹여 살릴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어릴 땐 '이게 아니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도 중요하고 내가 돌봐야 할 사람도 있다. 책임감이 훨씬 커졌다. 다른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닥치면 다 해야 한다. 쿠팡이라도 뛰어야지 않겠나"라면서 웃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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