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입맛 사로잡은 '어쩌면 해피엔딩'…박천휴 작가가 밝힌 비결은, 오랜 우려냄과 정성 [TEN인터뷰]
입력 2025.06.17 06:30수정 2025.06.17 06:30
"한 관객은 제 공연에 대해 '보는 내내 집에 있는 아내가 그리웠고, 함께 이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고 했어요. 이 얘기는 제가 들은 칭찬 중 최고였어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미국의 최고 권위 시상식 '토니어워즈'까지 진출시킨 박천휴 작가의 얘기다. 박 작가는 최근 한국 언론들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에게 이 말을 했던 관객은 결국 비행기표를 바꾸는 수고까지 하면서 아내를 보기 위해 집에 일찍 돌아갔다"며 "그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아내와 함께 이 공연을 봤다"고 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시작된 국내 창작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어워즈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중 작품상을 비롯해 극본상, 음악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무대 디자인상까지 총 6개 부문 트로피를 싹쓸이하며 한국 뮤지컬의 새 역사를 썼다.
사진=NHN 링크 제공
박 작가는 "'어쩌면 해피엔딩'을 처음 쓰기 시작한 2014년부터 작년 가을 브로드웨이 개막까지 윌 애런슨과 계속해서 다듬으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고 짚었다. 윌은 박천휴 작가와 '어쩌면 해피엔딩'을 위해 손을 잡은 미국의 작곡가다. 윌 역시 이번 토니상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16년 초연 전인 2014년부터 10년이 넘는 지금까지 합을 맞추고 있다.
박 작가는 윌에 대해 "한국에서는 윌을 '작곡가'로 칭하지만, 미국에서는 저희 둘 다 'writer – 작가' 즉,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며 "제가 먼저 생각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윌과 함께 이야기를 짓고 음악의 정서와 질감을 정하고, 매일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협업자이기 전에 17년째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정서에 비슷한 면이 많다. 서로의 예술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내가 할 일과 네가 할 일을 구분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작업한다. 그리고 한 작품을 끝냈을 때 느껴지는 성장도 거의 매 순간 함께해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NHN 링크 제공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구형 헬퍼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로봇은 더 이상 주인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되자 각자의 주인에게 버려진 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게 된다. 처음엔 어색하고 서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이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사랑과 우정, 외로움, 이별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배우게 된다. 이후 두 로봇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사랑의 의미를 고민하며 작품 말미에서는 행복한 결말이 무엇인지에 대해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로봇들이 사랑을 한다는 독창적인 요소와 섬세하게 다룬 인간적인 감정선 그리고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까지. 잘 어우러진 삼박자로 초연 7개월 만에 앵콜 공연을 이끌어 냈던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국인 맞춤으로 변신을 꾀하는 정성을 들였다.
박 작가는 "한국 공연과 규모가 다른 만큼 연출과 무대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며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매우 많은 무대전환과 효과가 쓰이기 때문에 배우의 숫자와 오케스트라의 악기 숫자 등이 더 늘어났고, 한국 버전에는 암시만 되고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장면을 브로드웨이에서는 추가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축약되거나 생략된 대사와 넘버도 있었지만 박 작가와 윌 애런슨이 거듭 다듬은 것은 완성도를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한 최선의 시도였다.
사진=NHN 링크 제공
박천휴 작가는 '어쩌면 해피엔딩' 외에도 '고스트 베이커리' 등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많이 다뤘다. 그 이유에 대해 "그저 작가로서 저에게 가장 친숙한 세상과 정서를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이유"라고 전했다. 25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아직도 영어를 할 때 한국식 악센트가 종종 나온다는 그는 뉴욕에 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훨씬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때문에 박 작가는 "윌과 함께 만든 '일 테노레'의 1930년대와 '고스트 베이커리'의 1970년대 배경을 활용해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선 질감의 세상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관객들에게는 낯설지만 묘하게 공감되는 세상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 뮤지컬계에서 최고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꼽히는 토니 어워즈에서 무려 6관왕을 거머쥐었으나, 이를 그저 하나의 이벤트로 여기는 듯했던 박 작가는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충동과 의지가 계속되는 한 그저 꾸준하고 진중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울과 뉴욕에서 보낸 시간이 이제 거의 50 대 50으로 가까워지고 있는데, 두 문화와 언어를 오가는 창작자로서 조금은 다른 관점을 가지면서도 많은 분께 공감을 얻고 의미가 있을 이야기들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