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자립준비청년의 현실을 담담히 담은 영화가 있다. '문을 여는 법'이다. 영화는 판타지 드라마 장르로, 유쾌하면서도 은유적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감정 과잉의 상태로 이들을 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문을 여는 법'을 공동 연출, 각본을 맡은 박지완 감독과 허지예 감독을 텐아시아가 만났다.

박지완 감독은 "단편이라 개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다. 큰 행운이다. 캠페인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길 원하며 만드는 영화인데, 개봉이라는 형태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어 좋다. 관객들 중엔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들도 계실 거다. 많은 사람들이 볼지, 또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허지예 감독은 "그 동안 단편을 꽤 만들어왔지만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다니 좋다. 좋은 취지의 영화를 관객들과 소통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뜻깊고 기분 좋다"며 기뻐했다.

공동 연출이 처음인 두 사람은 로스트앤파운드라는 팀명도 만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이세계(異世界)에서 처음 당도하는 공간이 분실물센터 이름도 로스트앤파운드이다. 여성감독네트워크 운영진인 허 감독이 뉴스레터 작성을 위해 박 감독을 인터뷰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박 감독은 "인터뷰 때문에 만났는데, 제가 반한 거다"라며 "후배 감독님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허 감독과 공동 연출을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 허 감독님은 이유도 모르고 저를 만났고, 2~3일 고민해보고 답해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하겠다더라"며 웃었다. 허 감독은 "인터뷰하는 게 저한테는 일종의 팬미팅, 사심을 채우는 자리였다"라며 "박 감독님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없었다. 거절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말했다.
40대인 박 감독과 20대인 허 감독. 선후배 사이 공동 연출·각본에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허 감독은 "없었다"며 웃었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를 혼자 쓸 때 자기 점검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동 연출하는 친구가 있으니 오히려 자유로웠다. 내가 헛소리해도 '아닌 것 같다' 얘기해주기도 했고, 서로 의논하며 뜻밖의 요소가 더 들어가기도 하고 얘기가 이야기가 멀리가면 잡아주기도 했다. 혼자라면 제어하기 어려웠을 텐데 재밌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을 소재로 한 기존 콘텐츠들이 그들의 연민의 시선으로 조명한 것과 달리, '문을 여는 법'은 유쾌하고 엉뚱한 동화, 판타지로 이야기를 연출했다. 박 감독은 "2~3년 전 다큐멘터리, 후원 등 이들을 향한 관심이 한참 있었다. 하지만 연민에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다. 이면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허 감독은 이전의 다른 작업보다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작업했다고 한다. 허 감독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전 작업들보다 더 섬세함이 요구된다고 느꼈다. 나도 모르게 왜곡하게 되면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극 중 하늘이가 느끼는 감정들이 중요한데,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당사자들, 보육원 엄마들을 인터뷰하며 감정적 영역에서 그들을 느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영화는 분실물센터, 세차장, 미아보호소, 놀이동산 등 주인공이 여러 공간으로 이동한다. 각 공간에서 주인공은 어찌 보면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서 받는 편견, 오해, 고충 등을 담은 것. 극 중 절도범으로 오해 받은 하늘을 경찰들이 이송하는데, 경찰들은 '색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장면도 그러한 맥락이다. 또한 분실물센터에서 하늘은 집을 잃을 위기에서 정신없이 서류를 작성하게 된다. 부모의 성명란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을 수밖에 없다. 이 서류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 건지 자세히 알려주는 이도 없다. 허 감독은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 나갔을 때 실제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많더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나간다는 걸 반영했다. 살면서 학교 등에서 서류에 부모 이름을 적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이 '흠칫'하게 되는 순간, 그걸 마주하는 순간 등 현실을 반영했다"고 전했다.
하늘 역을 맡은 배우 채서은은 특유의 밝고 화사한 이미지로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환기시키고 판타지 동화 같은 이야기 흐름과 어울리는 밝은 연기를 보여줬다. 허 감독은 채서은에 대해 "10회차 촬영 내내 에너지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온 마음을 다해 하늘이를 느끼려고 준비된 분 같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판타지물도 좋아한다고 했고 질문도 많이 하더라. 작업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박 감독 역시 "우리가 설계해놓은 캐릭터의 감정대로 잘 따라와줬다. 스스로도 많이 점검하더라. 연기하다보면 약속했던 것보다 더 화날 수도 주눅들 수도 있는데, 본인이 적정선을 알아서 잘 찾아줬다"고 칭찬했다. 또한 "다른 배우들은 1회차 촬영인 경우가 많았는데, 하늘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온다. 하늘이가 헤매면 얘기가 틀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촬영장에 들어오며 매번 인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걱정을 무마시켰다"며 미소 지었다.

그간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을 선보여온 두 감독. 박 감독은 "특별히 마이너리티를 다루고 싶었던 건 아니다. 제가 생각한 얘기가 재밌는데 마이너리티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가 저한테는 인생에서 하지 않을 선택을 많이 하게 한 작업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계획적인 저와 즉흥적인 허 감독, 나이 차이 꽤 나는 후배와의 작업. 제 동료와 허 감독 동료가 합쳐지니 세대가 섞여서 좋았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편협한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 다른 방식의 작업도 찾아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분위기가 밝은 영화를 찍으니 즐거움이 많더라. 이런 식으로 작업해도 재밌겠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허 감독은 "소외된 사람을 소재로 다루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소외된 사람들의 얘기에 더 공감되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들면서 제가 품고 있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다정함'이다. '다정함'이 담기는 과정도 중요하고, 결과물에도 미미하지만 다정한 순간들을 넣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키워드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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