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평론가가 추천하는 이 작품]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태양을 덮다'입니다.
'태양을 덮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격동의 5일간을 재구성한 르포 영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끝나지 않은 위험성과 숨겨진 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태양을 덮다'의 기본 틀은 사건을 재구성하는 스릴러 형식이다. 동일본 대지진이 있던 날로부터 5일 동안 벌어진 일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데 이런 유를 흔히 논픽션 드라마라 부른다. 철저히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극영화라는 뜻이다. 그 중심에 신문기자 나베시마(키타무라 유키야)가 서 있다. 그는 강력한 지진이 있던 날 이것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고 확인해나가는 민완기자 역할을 한다. 다른 정부출입 기자들보다 발 빠른 움직임으로 그가 알아낸 사실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 무엇인가 큰일이 터졌다는 것이다.

우선 직면한 문제는 지진으로 전력공급이 끊겨 냉각수가 원자로로 유입되지 못하는 사태였다. 냉각수를 유입하려면 원자로에 가득 들어찬 수증기를 배출하는 벤트 작업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외부전력이 공급돼야 하는데 전력차가 발전소에 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지진으로 모든 도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난관을 뚫고 겨우 한 대가 들어가긴 했으나 이번에는 플러그가 맞지 않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회사도 허둥대고 있는 것이었다. 이후로 벌어지는 혼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시간을 따라 흐르는 이야기 구성이 흥미를 끌었고 시시때때 벌어지는 사건을 정리하는 솜씨도 좋았다. 특히 10km, 50km, 70km로 점점 넓어지는 대피 범위에 따라 사람들이 허둥지둥 이동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피난 나왔던 주민들 대부분은 아직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영화에 나오듯 잠시 들러 세간을 정리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피해 범위는 337㎡로 서울시 면적의 반을 상회하고 피난민 숫자는 대략 10만 명이 넘는다.

용감한 사나이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진이 난 다음날 1호기가 폭발했고 또 하루 지나 3호기가 폭발했다. 4호기는 정지상태였지만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아 연료봉이 노출될 위기에 처했는데 연료봉이 과열되면 원자로 용해가 시작된다. 방사능 유출을 피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피해범위로 여겨지는 후쿠시마 반경 250km에 수도 동경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원전 사고 후 불과 3일 만에 동경 시부야의 방사능 수치가 이전의 100배까지 올라갔다. 1년 뒤 나베시마가 정보부족 탓을 하면서 변명을 늘어놓는 관방 부장관인 데츠로(오시니 시마)에게 물어본 말은 "만일 정보만 있었다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을까"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처음 터진 원전사고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질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원자력발전을 안전한 에너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만 관리하면 싼 값에 효율적인 전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믿는 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세상에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여전히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 글을 쓴 날에도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우럭(조피볼락)에서 방사능 기준치 5배의 세슘이 검출돼 일본 내에서 출하중단'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엄연히 현재형이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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