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이 되려면 할아버지의 논리를 따르라
는 가족으로 편입될 타인은 노년층이 구축한 가족의 법칙을 따를 것을 명한다." src="https://img.tenasia.co.kr/photo/202001/AS10hj22STZdGVQCuwkDHdT3RZd2ob3q9pCk.jpg" width="555" height="185" border="0" />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갈등의 축으로 기능하는 <무자식 상팔자>는 그런 김수현의 특기가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톱니바퀴처럼 물린 인물들의 욕망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를 수시로 바꾼다. 자연스럽게 사건과 사고는 끊이지 않으며 드라마는 가족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수고와 고단함을 역설한다. 다수는 개인의 의견과 취향을 묵살할 힘을 가지며,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연장자라는 권위뿐이다. 따라서 절대적 연장자가 되지 못하는 모든 개인은 끊임없이 소수가 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피로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진 갈등에 대해 드라마는 좀처럼 선명한 해결을 제시하지 못한다. 인물들은 구조를 전복시키거나 탈출을 감행하지 못하며, 드라마는 그런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끝내 가족 시스템에 복속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 가족의 사랑은 위대하지만 그 사랑은 받을 자격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이 모여 살아야 할 이유는 ‘가족’이라는 운명 외에는 달리 설명되지 못한다. 결국 생생하게 갈등을 구축하는 드라마의 장점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만 것이다.
해결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자식 상팔자>의 중년들은 자신의 욕망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을 부모 혹은 자식으로 치환하며, 도리는 온전한 개인의 욕구 위에서 누름돌이 된다. 출산을 한 미혼의 딸이나 혼기를 놓친 과년한 아들을 받아들이거나 다그치는 것은 희재(유동근)와 지애(김해숙)의 판단이 아니라 호식(이순재)의 ‘말씀’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심지어 효주(김민경)의 과감한 헤어스타일에 대해 잔소리를 하면서도 유정(임예진)이 걱정하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중년은 결국 노년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계승한 중년의 모습이며, 이들은 젊은 세대에게 계승의 방식을 전수하기 위해 애쓴다. 희재의 아들들과 맺어질 영현(오윤아)과 수미(손나은)가 계급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생활력과 요리 실력을 갖춘 것이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신체적 한계가 성격적인 결함으로 이어지는 새롬(견미리)이 사돈댁의 식사까지 관여하는 살림꾼 엄마를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족으로 편입될 타인은 결국 노년층이 구축한 가족의 법칙에 부합하는 인물이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이 잠식한 가족의 일상
결국 <무자식 상팔자>는 가족이 아니라 권력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것의 중심에는 자본이 있다. 퇴직으로 인해 자본 권력을 잃은 희재와 희명(송승환)에게 호식의 주유소는 외면할 수 없는 권위이며, 이것은 “할아버지가 밥도 먹여주고 카페도 차려 줄 것”이라고 믿는 준기(이도영)를 통해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이혼을 선언한 금실(서우림)을 통해 제기되는 논쟁 역시 갈등의 원인 보다는 재산분할의 문제가 크다. 자신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준기에게 지애가 가하는 협박은 “옷 벗고 나가라”는 자본 박탈의 것이었으며, 이것은 준기가 경제적으로 부모보다 약자의 처지에 놓여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요컨대, <무자식 상팔자>는 자본주의 시대의 중년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년의 자본과 타협한 결과 탄생한 가족에 대한 스케치다. 이들은 여러 인물들의 입을 통해 가엾고 안쓰러운 세대로 불리지만 용감하지도, 단호하지도 않다. 그리고 용기와 결단력으로 삶을 개척하지 않는 이들이 강요하는 사랑은 너무나 조건적이기에 허무하다. 예리한 칼이 만들어낸 흔적은 수술일수도, 자상일수도 있다. 홈드라마의 외피 아래서 <무자식 상팔자>의 흔적이 무엇으로 남을지, 불편함은 결과를 예측할 만큼은 자라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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