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계피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을방학의 ‘취미는 사랑’이 가장 유명한 곡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없는 산책길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는 듯한 느낌으로 ‘속아도 꿈결’을 부르는 계피의 나른한 목소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계피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앨범 <우쿨렐레 피크닉>의 첫 번째 트랙. 화창한 봄날 예고 없는 외출로 주인을 놀라게 한 귀여운 고양이에 대한 곡 ‘작은 고양이’는 어딘가 모르게 ‘속아도 꿈결’과 닮아있었다. 어느 하와이 해변에서 세 사람이 한가롭게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는 재킷 사진만 놓고 보면 겨울에 듣기엔 조금 추운 앨범일 수 있겠지만, 특별할 것 없어도 사소한 행복을 노래하는 <우쿨렐레 피크닉>은 나에게 여름용 앨범이 아니라 일탈용 앨범이었다. 반복되는 새벽 마감 때문에 아침의 상쾌한 공기,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감각이 차츰 희미해지자 이 앨범을 더욱 자주 찾게 되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지하철을 타러 가는 출근길, 마트에 들러 초콜릿과 커피를 사가지고 가는 퇴근길. 네가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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