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마다 한 해를 정리하는 것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달력의 날짜 외에 리셋되는 것은 없으며 새해는 지난해의 유산을 안고 출발한다. 가 연말마다 드라마에 대해 결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왜 올해는 지난해처럼 KBS 와 MBC , KBS 같은 작품들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것은 다음해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 이것은 올해의 드라마들을 심판하겠다는 오만함이 아니라 재밌는 드라마를 내년에도 보고 싶은 열혈 시청자의 제언에 가깝다. 그러니 이 문제제기에 대해, 가 선정한 올해의 작품과 인물들에 대해, 그리고 결코 유쾌할 수 없던 ‘노땡큐’의 순간들에 대해 함께 열띠게 이야기 나눠주시길. 그리고 가 준비한 조금은 엉뚱한 시상식 역시 마음 열고 즐겨주시길.대한민국의 2011년은 고물가, 트위터, 현빈, TV 오디션 프로, 안철수, 그리고 여전히 돈, 돈의 해였다. MBC (이하 )의 이적은 먼 미래에 2011년을 이렇게 회상한다. 여전히, 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누적된 피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2011년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그 어느 때보다 돈에 얽매여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MBC 의 구애정(공효진)은 본인의 자존심과 사랑을 지키는 것만큼 안정적인 일이 필요하며, KBS 의 노순금(성유리)은 애초에 직업적 자존감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식모다. 고시원의 방세를 걱정해야 하는 진희(백진희)와 집이 폭상 망해버린 안내상(안내상)네 육식솔처럼 의 주인공들 역시 당장 역시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하다.
드라마, 현실의 비극을 앓다

하여 과거의 신분 상승 판타지로는 현실의 고민을 잊게 해주기 어렵다. 2010년을 알린 것이 의 시작이었다면, 2011년을 알린 건 SBS 의 퇴장이었다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계급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듯했지만 결국 이 드라마는 진정한 노블레스 김주원(현빈)과 씩씩한 서민 길라임(하지원)의 동화 같은 사랑으로 끝났다. 그리고 이후 등장한 일련의 드라마들은 이 세계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MBC 속 JK그룹을 유지하는 것은 부의 집중을 위한 지주사 설립과 정관계와의 밀착, 그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며느리조차 본명이 아닌 K로 불려야 하는 철저한 도구주의다. 한편 SBS 는 기업의 주인이 노동자가 아닌 주주가 된 시대에 투기 세력에 의해 기업이 어떤 식으로 좌지우지되는지 보여준다. 이 재벌 드라마들은 자본이란 이름의, 우리의 일상도 조종할 수 있는 괴물의 맨얼굴을 직시했다는 점에서 2011년이 만들어낸 어떤 성과다. 하지만 그 리얼리티는 동시에 현실의 시름을 더욱 깊게 한다. 인숙, 그리고 의 도현(장혁)은 거대한 비윤리적 시스템에 맞서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 안에 편입된다. 김주원이 아닌 길라임의 세계에만 만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기다리는 건 처남 집에 얹혀살고 하루 두 시간만 자고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하는 의 우울한 세계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정직한 절망 이후 희망의 전망을 어디서 성취할 수 있는가.
초인을 기다릴 것인가, 광야를 비옥하게 할 것인가

SBS 의 선전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드라마 속 세종(한석규)이 한글 반포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모든 이가 글을 통해 서로 논쟁하고 협의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세계다. 세종이 물러나면 권력의 세습과 비리가 민생을 좀먹을 수도 있지만 수많은 대중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성하고 행동한다면 역사는 진보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성군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의 우리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드라마 시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요원한 제 2의 노희경, 제 2의 김수현

그래서 지금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그’ 종편 채널에 노희경 작가의 신작이 방영된다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시청자를 끌어오기 위해 노희경과 정우성의 네임밸류에만 기대는 편성의 안일함이다. 올해 볼만한 로맨스물이 홍정은, 홍미란 작가의 과 김수현 작가의 SBS 정도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일가를 이룬 작가들이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건 반길 일이지만 제 2의 노희경, 제 2의 김수현의 낌새조차 느낄 수 없는 상황은 암담하다. 만약 올해 쾌재를 불러야 할 일이 있다면 이 루마니아에 수출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KBS 을 통해 같은 실험적 장르물이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6부작을 예상하고 만들었던 이 짜임새 있는 이야기는 결국 미니시리즈 편성을 받지 못해 8부작으로 방영됐다. 이런 작품이 16부 편성을 받을 수 없는 것에 문제제기를 할 것인가, 8부작으로라도 방영될 수 있는 것에 감사할 것인가.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고 지친 일상을 최소한 TV로라도 위로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이미 한 번 경험한 것이지만, 잘못된 선택은 한 번이면 족하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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