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시장의 문전성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쇼, 오락 프로그램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들이 활약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감초를 넘어 아이돌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지금, 아이돌 시장은 피할 수 없는 옥석 가리기의 시기를 맞았다. MBC에브리원 (이하 )와 ETV (이하 ) 역시 그 매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2PM을 ‘짐승돌’의 최강자로 올려 놓은 영광을 간직한 는 거의 동일한 포맷으로 신진 아이돌 엠블랙을 사수하고 있고, 역시 비교적 덜 알려진 아이돌그룹의 멤버들을 설파하기 위해 나섰다. 과연 이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이돌의 매력을 파헤치고 있는 것일까? 최지은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다년간의 경험으로 쌓은 아이돌 감식안을 작동시켰다. /편집자주
“스승 비는 우리가 뛰어넘는다!” MBC에브리원 시즌 5의 목표의식은 뚜렷하다. 시즌 5의 주인공인 엠블랙에게는 ‘순진돌’에서 벗어나 를 통해 스승 비를 뛰어넘어 “나쁜 남자”로 거듭나라는 목표가 주어져 있다. 하지만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시즌 5가 진짜 뛰어넘어야 할 대상은 스승이며 사장님이고 형님이지만 ‘저 멀리’ 있는 존재인 비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의 ‘영광의 시절’이었던 일 년 전의 시즌 3이다.
, 엠블랙이 보이지 않는다 형식적인 면에서만 보았을 때, 시즌 5는 시즌 3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진행된다. 대신 시즌 5는 시즌 3에 비해서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시간과 각 코너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 시즌 5는 첫 회에서만 아이돌 코리아 선발대회, 스피드 퀴즈, ‘쥐를 잡자’와 입으로 종이 옮기기 모두를 소화해냈다. 뚜렷한 규칙 없이, 진행자인 신봉선 조차도 게임의 룰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산만하게 진행되는 게임의 의도는 분명하다. 아직 신인의 꼬리표를 떼지 않은 엠블랙의 멤버 각각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의도는 생각보다 각각의 멤버들과 잘 맞아 떨어지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나름대로의 재미를 준다. 그룹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던 리더 승호의 머리 위에는 언제나 우울한 비가 내리고, 최연소 할리우드 진출자인 에이스 이준은 홀로 상황극을 만들고, 러브라인에 몰입하면서 의외로 허당인 모습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신속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데다가 정형화 되어 있는 것이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엠블랙 멤버들 각자의 매력을 인지하기도 전에 각 멤버들에게 부여된 캐릭터를 먼저 받아들이는 현상을 낳게 된다는 점이다. 그 캐릭터 바깥에서 엠블랙이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시즌 3에서 매주 반복되었던 매력발산의 시간이 시즌 5에 이르러서는 훨씬 줄어든 상황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개인기를 보여주든, 매 회마다 무언가를 준비해 보여주어야 했던 2PM과는 다르게, 5회에 이른 지금까지 엠블랙이 매력을 보여주는 시간을 가진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실제로 제대로 된 커플 선정이 이루어 진 게 몇 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회의 목적은 티아라 멤버들과 짝지어 따로 떼어놓고 데이트를 시켰을 때 엠블랙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도시락의 겉모양만으로 초고속으로 커플이 선정된 다음, 엠블랙과 티아라 멤버들은 곧바로 놀이기구, 스케이트장, 경품 뽑기 등으로 나뉘어 데이트를 해야만 했다. 홀로 ‘사랑에 빠진 아이돌’ 상황극을 만들어내던 이준의 고군분투를 제외한다면 거의 무작위로 선택된 커플들은 서로 어색해하고, 존칭을 고민하다가 주어진 시간을 다 보내 버리고 말았다. ‘누님들’이 엠블랙 멤버들의 냄새를 맡는 것으로 커플 선정을 했던 4회도 마찬가지다. 진행자인 신봉선과 정주리가 게스트에 합류해 버리자, 기 센 누나들의 틈에서 엠블랙은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이렇게 엠블랙 멤버들이 ‘무엇도 하지 못 하는’ 상황은 ‘순진돌’을 보는 재미가 아니라 지루함과 안타까움을 준다. 주인공인 엠블랙과 게스트 사이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관계에서의 긴장감을 불러일으켜야 할 진행자들이 ‘그녀들’의 위치에 서 있는 것도 문제다. 시즌 3에서 붐이 산만하고, 제어할 수 없는 남자 아이돌이 ‘그녀들’과 만났을 때의 어색함을 무마시키면서 스스로 멤버들과 동일시되어 최대치의 리액션을 이끌어냈다면, 신봉선과 정주리는 엠블랙의 바깥에서 게스트들처럼 멤버들을 지켜본다. 그 때문인지 진행자들은 조금씩 드러나는 엠블랙 멤버들의 강한 승부욕을 끌어내지도 못하고, 정리와 단순 진행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만 그치고 있다.
아이돌의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으려면 시즌 3이 방영된 지 정확히 일 년이 지난 지금, 시절은 전과 같지 않다. 그 사이의 1년은 여러 가지 의미로 ‘아이돌의 시대’였다. 아이돌을 소재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지금, 는 그 원조 격이 될 법한 프로그램이다. 특유의 자막이 주는 재미와, 산만하고 좀 어설프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아이돌을 지켜보는 소소한 재미는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의 시즌 5에는 시즌 3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현재의 포맷이 유지되는 이상, 시즌 3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즌 5의 돌파구는 하나뿐이다. 김새롬처럼 “엠블랙을 잘 모르는” 사람들, 대다수의 시청자에게 엠블랙만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단순히 매력 발산을 하고, 춤을 추라는 것이 아니라 엠블랙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준이 비의 닮은꼴이나 ‘어린 비’로 남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엠블랙 역시 엠블랙으로 남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즌 3의 성공비결이며, 포화되어있는 아이돌 시장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글 윤이나
“(사람들이) 널 모르기 때문이야.” E! TV의 () 1회, MC 유세윤은 가슴에 유치원생처럼 커다란 이름표를 달아야 하는 이유를 묻는 FT 아일랜드의 승현에게 명쾌하게 답한다. “사실이냐”며 충격 받은 승현의 가슴에 대못도 친다. “이제 겨우 니 이름 알겠지. 아직도 성은 몰라.” 냉정한 현실 인식과 그에 따른 맞춤형 전략, 가 처음부터 보여준 프로그램의 색깔이다.
성 안의 왕자와 공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아이돌의 세계
vs <막반시>│지금은 아이돌 무한경쟁 시대"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성골’로 대우받던 시기가 있었다. 수십만 소녀 팬들의 지지를 받는 인기 아이돌들은 접촉 사고 내면 억 단위로 배상해야 하는 외제차처럼 취급되며 몸싸움이나 거친 농담으로부터 보호받았다. 다른 출연자들 역시 팬들을 노골적으로 의식하며 너스레를 떨었고 돈과 여자, 인지도 등 아이돌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소재는 모두 금기였다. 그러나 최근 1, 2년 사이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오면서 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도록 바뀐 방송 환경은 이들에게 ‘왕자’나 ‘요정’ 바깥의 길을 찾게 만들었다. ‘생계형 아이돌’ 카라의 성공과 MBC 에브리원 에서 망가짐을 통한 대박을 일궈낸 2PM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케이블 채널의 신생 예능 프로그램이자 비교적 인지도 낮은 그룹의 막내들만 모아 놓은 ETV 는 자신들의 약점을 고스란히 까발리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KBS 의 ‘파라다이스’를 부른 그룹 티맥스의 윤화”처럼 여성 출연자를 섭외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소개하는 데만 10분이 걸리는 이들의 현실은 게스트 샤이니에게 “공중파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명품돌”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두 집단의 인지도 차이를 의도적으로 드러낼 때 굴욕을 동반한 코미디로 승화된다. 팬들 사이에서는 자존심 싸움의 주제인 검색어 순위를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끌어들인 아이디어 역시 좋다. 자신의 이름이 순위 안에 없음을 뜻하는 ‘짝대기’에 좌절하고 모처럼 1000위 안에 들었다며 얼싸안고 기뻐하는 장면은 신인이기에 나올 수 있는 것들이고, 가수검색순위와 연관검색어를 넘나들며 출연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완급조절도 센스 있다.
막내들도, 제작진도 살아남을 방법을 알고 있다 인지도는 낮지만 예능감은 ‘막내’가 아닌 출연자들의 면면 또한 를 흥미롭게 하는 비결이다. 스물여덟에 ‘어린이병’ 걸린 마이티 마우스의 쇼리 J, 스캔들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2AM 진운, 근거 없는 자신감의 승현, 만만하지 않은 ‘중딩’ 동호 등 몸 사리지 않고 굴욕에도 꿋꿋한 캐릭터들은 MBC 나 KBS 등 선배들 가득한 프로그램에서와 사뭇 다른 모습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아이돌의 필수요소인 윙크를 보여준 뒤 서로 하이킥을 날리는 분위기는 아이돌이면서도 ‘귀여운 척’을 싫어하는 남자애들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허세 가득한 복학생 선배처럼 분위기를 주도하는 유세윤은 의 붐에 이어 아이돌계 큰 형님의 자질을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들이 보통 그룹 내에서 만들어지는 단짝이나 천적 같은 ‘관계’와 그에 따른 스토리를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 조성모의 높이뛰기 기록 갱신이나 비의 승부욕 뛰어넘기 등 애매한 미션에 도전하던 초반 전략을 수정해 성대현, 고영욱 등 백전노장 ‘잉여반란시대’를 투입한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2, 30대 누나들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으로 연상녀 게스트들을 데려와 평범한 연애 관련 토크와 버라이어티용 게임을 하면서 프로그램의 중심은 분산되었고 출연자들의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목표도 잠시 흐트러졌다. 그러나 제작진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적’으로 긴장감을 이끌어낸 엠블랙과의 대결에 이어 샤이니와의 재대결을 준비해 “아예 끝장을 내주겠다”는 살벌한 경고를 얻어낸 것만으로도 귀추가 주목된다. 글 최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