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엉성한 조폭 장룡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음문석. /조준원 기자 wizard333@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엉성한 조폭 장룡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음문석. /조준원 기자 wizard333@
“속옷과 양말까지도 ‘롱드’의 분위기로 준비했어요. 직접 동대문에 가서 의상을 사기도 하고 아는 디자이너 형에게 부탁해서 빌리기도 했죠.”

지난달 종영한 SBS ‘열혈사제’에서 장룡 역을 맡아 ‘롱드’라는 애칭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은 음문석의 얘기다. 음문석은 현재 소속사가 없어 직접 모든 걸 챙기고 있다.

관심을 실감하느냐고 묻자 “얼마 전 쏭삭 역의 (안)창환이와 ‘본격연예 한밤’의 거리데이트를 촬영했는데,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제작진에게 ‘(김)남길 선배나 (이)하늬가 온다고 잘못 공지한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했다. 음문석은 이번 드라마를 연출한 이명우 감독의 전작 ‘귓속말’에 백상구(김뢰하 분)의 부하4로 출연한 인연으로 ‘열혈사제’와도 만날 수 있게 됐다.

“어느 날 저녁 ‘잠깐 올 수 있겠냐’고 캡틴(이명우 감독)에게 전화가 왔어요. 갔더니 ‘외국인을 괴롭히는 장룡’이라고 쓰인 장면의 대본만 보여주셨죠. 어떤 내용, 어떤 장르인지도 몰랐어요. 첫 대사인 ‘간장공장 공장장은 장 공장장이고 혀봐. 말을 똑바로 하라고’를 했더니 캡틴이 웃으셔서 실패했다 싶었죠. 그리고 그날 바로 동대문시장에 가서 단발머리 가발을 사서 쓰고 그 장면을 각색해서 연기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냈어요. 일주일쯤 후에 같이하자는 연락을 받았죠.”

배우 음문석 “중학생 때 혼자 상경한 이후 방송 댄스부터 동대문시장·구둣가게·편의점·호프집 알바 등 이것저것 하면서 버텼다”면서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옷가게 알바를 할 때는 공짜로 돈 버는 느낌이었다”며 웃었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배우 음문석 “중학생 때 혼자 상경한 이후 방송 댄스부터 동대문시장·구둣가게·편의점·호프집 알바 등 이것저것 하면서 버텼다”면서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옷가게 알바를 할 때는 공짜로 돈 버는 느낌이었다”며 웃었다. /조준원 기자 wizard333@
음문석은 캐스팅된 이유가 궁금해 감독에게 직접 물어봤다고 했다. 그는 “‘귓속말’ 촬영 중간 중간 생각지 못한 디테일이 있어서 인상 깊었다고 캡틴이 말했다”고 전했다. 음문석은 특이하게도 ‘감독님’ 대신 종종 ‘캡틴’이라고 칭했다. 왜 캡틴이라고 부르냐고 물었더니 “왠지 더 친숙하지 않냐”며 수수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영화를 찍었을 때도 저는 항상 감독님에게 캡틴이라고 했어요. 대장이라는 뜻이니까요. 처음엔 좀 놀라시는데 금방 편하게 받아주세요. 필요한 것만 딱 하고 마는 것보다 궁금한 것도 먼저 물어보고 대화도 많이 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더 돈독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친숙하게 다가가는 게 제 장점입니다. 하하. 캡틴이라고 하는 게 혹시 잘못하는 건 아니겠죠?”

이번 드라마에서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와 강렬한 원색의 정장, 화려한 패턴의 실크 블라우스는 장룡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감독님과 회의를 많이 하며 캐릭터를 발전시켜 나갔다”고 말했다.

“1970년대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2019년에 살고 있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제가 막 상경했던 때를 떠올렸어요. 그때 저는 ‘촌놈’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튀고 화려한 옷을 입으려고 했어요. 장룡도 제 딴에는 최대로 멋을 부린 건데, 남들 눈에는 촌스럽게 보인다는 콘셉트로 잡았죠. ‘롱드’라는 별명을 얻고 난 후에는 애드리브를 할 때 짧게 영어를 넣어보기도 했어요. ‘요즘이 어떤 시댄디 트렌드에 안 맞게’ 같은 식으로요. 하하.”

 ‘열혈사제’에서 안창환을 괴롭히는 음문석./사진제공=SBS
‘열혈사제’에서 안창환을 괴롭히는 음문석./사진제공=SBS
‘열혈사제’의 웃음 포인트 중 하나는 롱드와 쏭삭의 앙숙 케미였다. 쏭삭을 괴롭히는 롱드와 반전의 무술 실력으로 롱드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쏭삭.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결코 밉지 않았다. 찰떡 케미를 자랑했던 배우를 뽑아달라고 하자 음문석은 “창환이 1위”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환이와 그런 얘기까지 했어요. 별책부록처럼 이 드라마 안에 너와 내가 만드는 시트콤이 하나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저희는 단 한 장면도 의도적으로 웃기려고 한 적이 없어요. 우리의 상황을 보는 시청자들이 재밌는 거지 우리가 재밌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때리는 장면도 허투루 하지 않고 리얼하게 갔습니다.”

음문석은 “왜 단발머리일까, 왜 쏭삭을 때릴까, 왜 황철범 밑에서 일할까 등 이유를 많이 고민했다”며 “쏭삭을 괴롭히는 데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쏭삭이 감옥에 있는 장룡을 면회 온 장면을 떠올리며 당시 감정에 금세 몰입한 듯 눈동자에 눈물이 살짝 스몄다.

“장룡은 쏭삭에게서 자신을 봤을 거예요. 강해보이지만 실은 여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괜히 화풀이를 했던 거죠. 그랬는데 쏭삭이 자신보다 낫다는 걸 느꼈어요. 감옥에 있는 자신을 찾아왔을 때요. 원래 그 장면은 코믹하게 찍는 거였는데, 막상 그 날 쏭삭을 마주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내 친구 롱드’라고 말해주는 쏭삭에게 부끄럽고 미안했어요.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시즌2를 암시하며 끝난 ‘열혈사제’는 종영 후에도 시청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음문석은“배우들끼리도 ‘만약 하게 된다면 우리 그대로 다 같이 가자’고 했다”고 밝혔다.

“빈칸을 채웠던 캐릭터들이 빠진다면 균형이 무너질 것 같아요. 이 배우들 그대로 시즌2를 한다면 지금부터 바로 머리 기릅니다! 시즌2에서는 가발이 아니라 제 머리로 가야죠. 걱정스러운 건 머리숱이 적다는 거예요. 한번 길러 본 적이 있는데 골룸 같아서요. 하하.”

음문석은 “‘열혈사제’에 캐스팅된 계기도 연출 공부를 하며 영상 편집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고, 무에타이, 춤 등 오래 배운 것들이 액션의 바탕이 됐기 때문”이라며 “작은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조준원 기자 wizard333@
음문석은 “‘열혈사제’에 캐스팅된 계기도 연출 공부를 하며 영상 편집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고, 무에타이, 춤 등 오래 배운 것들이 액션의 바탕이 됐기 때문”이라며 “작은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조준원 기자 wizard333@
‘열혈사제’에 출연하며 배우로 인지도를 크게 높였지만 사실 음문석은 2005년 SIC라는 가수로 데뷔했다. god, 량현량하, 스페이스A 등 유명 가수들의 백업댄스로도 활동했고, 2013년에는 Mnet 댄스 서바이벌 ‘댄스9’으로 출중한 댄스 실력을 선보였다. 그룹 몬스터즈로 가수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미행’이라는 연출작과 단편영화 ‘아와 어’를 칸영화제에도 출품했다. 심지어 무에타이도 13년간 수련했다.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어울린다. 음문석은 “꿈을 찾아 상경한 게 벌써 22년 전이다. 구 서울역사를 쓸 때였다”고 회상했다.

“서울에 올라오면서 친한 친구들,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번호를 다 지웠어요. 어린 나이의 패기 같은 거였죠. 서울역 앞 빨간 빌딩을 보면서 ‘저 위에 내 이름 세 글자를 새겨야지’라는 생각도 했죠. 이제는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이 5000명 정도 되요. 막상 연락하는 사람은 몇 명 안 되긴 하지만요. 하하. 제가 지금까지 최소 연봉도 못 버는 생활을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족이 있다는 것과, 내 발자취가 떳떳하다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랜덤으로 전화해서 저에 대해 물었을 때 ‘항상 열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다고 자신해요. 제가 자랑할 건 사람밖에 없어요.”

연기, 노래, 춤… 음문석이 무엇 하나도 놓지 않고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장인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인형을 만든다면 전 눈도 붙이고 싶고 솜도 넣고 싶고 꿰매는 것도 하고 싶어요. 제가 하는 일들이 크게 보면 예술이잖아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후회 없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더디게 돌아왔을지 몰라도 이런 작은 흔적들이 지금의 견고한 저를 있게 했어요. 지금 받는 큰 관심도 조그마한 관심들이 모인 느낌이에요. 이제 다시 제가 할 일은 차갑게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겁니다. 은근히 불을 지피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성장을 계속 해야죠.”

음문석이 열정을 담아내는 그릇은 앞으로도 무한히 커질 것 같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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