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이지만 관객들이 연민을 느끼길 바랐어요. 그게 이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큰 축이었습니다. 연민을 느끼게 하려면 무서운 모습만 보일 순 없잖아요. 너스레를 떨거나 존댓말을 하는 식으로, 세게 가야 할 때는 약하게, 약하게 해야 할 부분에서는 반대로 강하게 표현했죠.”
최근 개봉한 영화 ‘협상’에서 인질범 민태구를 연기한 배우 현빈의 말이다. 현빈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악역을 맡았다. 극 중 민태구는 태국에서 한국 기자와 경찰을 납치한 뒤 이유도, 목적도, 조건도 알려주지 않은 채 인질극을 벌인다. 현빈은 “태구가 하나씩 단서를 던지며 관객들이 그의 속내를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얜 뭐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현빈은 민태구 캐릭터를 준비하며 어려움보다는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연기에 제약이 덜했다. 다른 때보다 훨씬 자유롭게 연기했다”며 “겹겹이 싸인 입체적 인물을 만들어 궁금증을 자극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착한 역할을 해도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늘 어렵다”며 웃기도 했다.
현빈은 ‘협상’으로 첫 악역에 도전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협상’은 ‘실시간 이원촬영’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영화 속에서 협상가인 하채윤(손예진)과 민태구는 모니터를 통해 대화를 나눈다. 실제 촬영도 이와 유사하게 손예진과 현빈이 각각의 공간에서 모니터를 통해 대사를 주고받았다. 촬영하는 공간도 각각 경찰 상황실과 인질범의 아지트로 제한됐다. 현빈은 “답답했고 외로웠다”고 말했다.
“캐릭터들이 계속 작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관객들도 답답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태구가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태구가 의자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위치를 바꾸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죠. 태구가 있는 공간은 좁지만, 관객들이 넓게 느끼길 바랐어요.”
현빈은 극 중 태구가 사용하는 의자, 라이터, 담배 등 작은 소품까지도 철저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동갑내기 배우 손예진과 함께 연기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현빈은 “뻔하지 않은 표현력을 가진 손예진에게 깜짝 놀랐다”고 했다.
“태구가 채윤을 도발하는 장면이 있어요. 예진 씨가 감정을 밖으로 표출할 줄 알았는데 안으로 삼키더라고요. 궁금증이 생기게 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배우였습니다. 내면에 숨겨둔 매력도 많아요. 흥이 많고 성격도 털털해요.“
‘협상’을 연출한 이종석 감독은 이번 영화가 첫 장편 데뷔작인 신예다. 신인 감독과 작업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느냐고 묻자 “오히려 다른 시각과 표현 방법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고 답했다. 어느덧 16년 차 배우가 된 현빈은 “작품 선택 기준은 첫 번째가 시나리오”라며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걸 찾는다”고 설명했다.
“배우로서 나이 먹는 건 좋습니다. 숫자가 올라가는 건 별로지만요. 하하. 경험이라는 건 큰 자산이고, 그로 인해 표현 방식도 더 풍부해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