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pd를 만나기 전 기사를 찾아보다가 위와 같은 댓글을 봤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90년대 말 조pd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 했다. TV에 나오지 않고 PC통신을 통해 이름을 알려 수십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며 가요계 폭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디스 전을 펼치며 논란을 낳았고, 그러면서도 히트곡을 연달아 냈다. 자연스레 ‘포스트 서태지’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세기말의 대한민국에 조pd는 정상의 위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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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pd를 음악으로 접했을 때 면도칼도 들어가지 않을 철벽을 가진 사내일 거라 생각했다. 힙합 패션이 아닌 말끔한 수트를 입고 온 그는 영락없는 스타덤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음악 이야기를 할 때 눈이 가장 빛났다. 새 앨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통해 뮤지션으로 돌아온 조pd를 만났다.

조pd를 보면 예전에 했던 핸드폰 선전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MP3를 들을 수 있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핸드폰 선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pd가 메롱 하고 내민 혀에 칩이 얹어져 있는 것이 굉장히 강렬했다. 당시 그의 이미지는 지금으로 치면 (빈지노+지드래곤)÷2 정도 됐다. “그때 광고 섭외가 여덟 개 정도 들어왔었는데 그 광고 딱 하나만 했어요. 사실 그때는 저 말고도 많은 가수들이 신비주의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죠. 상업적인 활동을 금기시하던 풍조가 남아있었어요. 지금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땐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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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이에 따라 (후배 힙합 가수들에게) 적용 가능할 것 같긴 해요. 특정 대상을 겨냥하지 않았지만 각각의 상황에 적용했을 때 딱 들어맞는 것이 좋은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었어요. 서태지 음악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자기 이야기고, 조피디 음악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듣는 사람 각자에게 다 적용이 가능하다는 글이요. 매우 공감했어요.”

조pd는 뮤지션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24시간 음악 작업에 매달렸다. “1999년부터 2002년 정도에는 정말 밥 먹고 음악만 만들었어요. 나중에 제작 일을 하게 되면 그런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음악만 만들 때가 참 복에 겨운 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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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덤엔터테인먼트는 현재 탑독의 새 앨범과 함께 신인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조pd는 소속 가수들의 앨범과 함께 자신의 음악도 꾸준히 작업할 예정이다. “일단은 탑독 새 앨범에 만전을 기해야죠. 제 앨범도 꾸준히 낼 거예요. 그 두 가지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탑독 친구들을 통해 음악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해요. 제가 그들에게 밭이 돼주고 싶어요.”

“‘언프리티 랩스타’를 봤는데 아주 나쁘지는 않았어요. 방송에 대한 글만 보고 전 정말 못할 줄 알았거든요. Mnet 제작진들은 지금처럼 힙합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을 태부터 ‘힙합 더 바이브’ 등을 통해 힙합을 방송에 내보내려는 노력을 했었어요. 그런 히스토리를 제가 알기 때문에 상업적이라는 비난에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비판받고 있는 부분을 조금씩 개선해나간다면 분명 힙합 신에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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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스타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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