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비밀’은 지난달 3일 방송된 3회가 시청률 10% 때에 돌입한 이후 매회 자체 최고시청률을 경신하며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다시 썼다. 드라마 예습·복습까지 불사하는 ‘비토커’를 양산한 데 이어, 드라마 제작자들에게까지 호평을 이끌어낸 ‘비밀’이 남긴 드라마적 성과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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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시리즈, 게다가 16부작이다. 분량의 길고 짧음이 완성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풀어내기에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다.
‘비밀’이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방법은 연출이었다. ‘비밀’의 속도감 있는 전개는 스릴러 영화처럼 끊임없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본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영리한 연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밀’은 네 남녀가 느끼는 감정을 시간의 순서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소품과 앵글을 통해서 순간적인 감정의 깊이를 디테일하게 담아낼 뿐이다. 언뜻 보면 불친절해 보이는 이런 방식의 연출은 되레 시청자로 하여금 그 감정의 근원과 발달과정을 상상하게 하며 자연스레 극 중 인물들에 대한 설득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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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비밀’의 로고를 넣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조태근 내과’처럼 ‘비밀’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포인트를 곳곳에 삽입한 것도 한층 높아진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 통속적이지만, 뻔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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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과의 결혼을 결심한 민혁이 유정을 찾아 “오늘 하루만 놀자”고 말해 그들은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민혁의 곁에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놓여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쳐버린 거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의 참맛은 그런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걸” ‘자기 앞의 생’의 한 구절은 ‘비밀’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도훈의 악행과 세연의 욕망이 모두를 파멸로 이끌고 있음에도, 여느 드라마처럼 명확한 선악 구분의 잣대를 들이밀기 힘든 까닭도 네 남녀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미쳐버린 ‘불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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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들이 기존의 이미지를 벗자 모두가 웃게 됐다
‘비밀’의 이야기가 어긋남 없이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빈틈없는 연출과 잘 짜인 대본으로 만들어진 판을 자유롭게 활용한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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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빈과 이다희도 마찬가지다. ‘배신의 아이콘’ 배수빈은 ‘비밀’에서도 여지없이 배신하는 남자 역을 맡았지만, 초반부터 지속적인 감정의 폭발이 있었음에도 분노와 절절함을 오가며 연기의 완급조절에 성공하며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다. 또 이다희는 ‘비밀’을 통해 팜므파탈 연기에 도전해 능숙한 호흡으로 세연의 복잡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비밀’은 다채로운 캐스팅으로 배우들에게는 이미지 변신의 장을 마련해주는 동시에, 새로운 모습을 이끌어내 드라마의 동력으로 삼는 영리함을 보였다. 흥행했던 작품과 동일한 이미지의 배역에 캐스팅해 소모적으로 배우를 활용하는 여타 드라마와 ‘비밀’이 차별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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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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