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거장 봉준호 감독에게 이런 찬사를 받은 영화감독이 있다. '우리들', '우리집'을 통해 아이들의 심리와 사회 문제를 따뜻하고도 냉철하게 담아낸 윤가은 감독이다. 윤 감독이 신작 '세계의 주인'으로 6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 작품에서 윤 감독은 10대 여성의 성과 사랑, 그리고 트라우마에 대해 다뤘다.
윤 감독은 이 작품에서 소재와 이야기에 대한 접근 방식에 변주를 줬다. 또한 신예 서수빈을 주인공으로 발탁해 '평범한 여고생'이라는 리얼리티를 살리고, 베테랑 장혜진을 주인공 엄마 역에 캐스팅해 깊이감을 더했다. 장혜진은 윤 감독에게 "이 영화로 성공할 생각보다는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에 집중하자"고 했다는 전언이다.
20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세계의 주인' 개봉을 앞둔 윤가은 감독을 만났다. '세계의 주인'은 열여덟 여고생 이주인(서수빈 분)이 전교생이 참여한 '아동 성범죄자 출소 반대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번 영화의 주제는 윤 감독이 이미 10여년 전부터 생각해왔던 테마다. 민감한 내용이 있어 방향성에 대해 고심했다고 한다. 윤 감독은 "개연성이나 퀄리티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라 어떻게 하면 사실적인 경험, 진짜의 순간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과 관련해 경험할 수 있는 폭력적 상황을 떠올리게 됐고, 제가 글을 쓸 때 그것이 자연스레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기에 그걸 밀어내는 기간이 길었다. 하지만 성과 사랑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로 인한 폭력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윤 감독의 전작 '우리들', '우리집'은 초등학생이 주인공이었다. 이들의 눈을 통해 1인칭 시점에서 그들이 겪는 학교 폭력, 아동 방치와 같은 사회 문제를 담아냈다. 반면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고등학생이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그리며 여러 시선을 함께 담아냈다.
윤 감독은 "기존 내 방식에 대해 매너리즘이 있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데, 내가 영화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주제와 소재를 들여다볼수록 개인과 사회의 시선을 함께 담아낼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윤 감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데 고통은 온전히 개인이 짊어지는 게 비극"이라며 "이 '세계' 안에서 개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같이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윤 감독이 배우를 뽑는 오디션을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한다. 프로필을 받아본 뒤, 배우와 1대 1로 수다에 가까운 대화를 나눈다. 이후 연기가 궁금해지는 배우들을 그룹으로 모아, 즉흥극이나 대본을 응용한 장면으로 '워크숍'처럼 그룹 오디션을 한다. '세계의 주인' 역시 '우리들', '우리집' 때와 마찬가지로 이 같은 오디션을 했다.
윤 감독은 서수빈에 대해 "사실 프로필이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았다"며 웃었다. 그는 "눈매가 살아있었다. 그 눈에서 총기와 생기가 뿜어져 나왔다"며 "앉는 모습을 보니 일종의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요즘 친구 같은 생기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상한 예의와 절도가 있었는데, 그게 매력적이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극 중 주인공 설정과 마찬가지로 서수빈 역시 태권도를 약 11년간 배웠다고. 이에 윤 감독은 "운명인가 하고 느꼈다"고 했다.
윤 감독은 '워크숍 오디션' 날의 서수빈에 대해 "즉흥극을 하면서 이 친구가 가진 생기 안에 유연함도 있다는 걸 발견했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오디션 장소로 가는 길이었는데, 앞에 오디션장을 향해 가는 서수빈 배우를 봤다. 뭔지 모르겠지만 손에 쪽지를 쥐고 흰 티셔츠에 추리닝 바지를 입고 가는 뒷모습이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호기심 많고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윤 감독은 "스케줄이 많아서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저예산 독립영화라 배우에게 맞는 개런티를 보장할 수도 없었다"며 "하지만 그가 시나리오 읽고 처음 했던 이야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장혜진이 '이걸 다른 사람한테 제안했다면 삐졌을 것'이라고 했다"며 "세상에 나와야 할 종류의 이야기가 우리를 거쳐서 나오는 것뿐이니, 이 작품으로 영화제에 가고 싶다거나 입신양명을 누리겠다는 등의 생각을 일체 버리고 해야 할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김석훈이 주인의 아빠 역으로, 고민시가 주인과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친한 언니 역으로 출연한다. 윤 감독은 "중심인물들이 신인이다. 이 세계가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길 원했는데, 아무래도 신인은 관객들 마음에 붙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은 '친숙한 얼굴'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세계의 주인'은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영화 '얼굴'로 토론토를 찾은 박정민과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윤 감독은 "작품을 지지해주는 분들의 발언은 단순히 저나 영화에 대한 칭찬이 아니다. 이 작품이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실존하는 '주인'에게 손을 내밀어줬다는 온기를 느꼈다. 많은 분이 봐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의 주인'은 오는 22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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