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을 만났다.
'세계의 주인'은 열여덟 여고생 이주인(서수빈 분)이 전교생이 참여한 '아동 성범죄자 출소 반대 서명 운동'을 홀로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윤 감독은 "스케줄이 많으셔서 거절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라 배우에게 맞는 개런티도 보장할 수 없었다. 선배님이 시나리오 읽으시고 처음 했던 이야기가 '잘 읽었고, 이걸 다른 사람한테 제안했다면 삐졌을 거'라고. 세상에 나와야 할 종류의 이야기가 우리를 거쳐서 나와야 하는 것일 뿐이니 헛된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 거 같다면 철저하게 버리라고 하시더라. 이 영화로 영화제에 가고 싶다거나 잘 만들어서 영화적 입신양명을 누리겠다거나 그런 생각들을 일체 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간 여러 캐릭터를 맡으라 연기에 장식이 많이 붙었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자신을 쳐내고 탈탈 털어내달라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이번 영화에는 김석훈이 주인의 아빠 역을, 고민시가 주인과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친한 언니 역으로 출연한다. 윤 감독은 "중심인물들은 신인으로 구성됐다. '이 세계'가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길 원했는데, 아무래도 신인이면 관객들 마음에 배우들이 붙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은 '친숙한 얼굴'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민시 배우는 인터뷰 때 저를 같이 하고 싶은 감독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좋은 기회가 닿아서 제안했다"고 밝혔다. 김석훈에 대해서는 "20년 전 대학로에서 연극 조연출 생활을 할 때 선배님을 처음 만났다. 아주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 그 역할을 했으면 했다. 제 욕심으로 제안했는데 좋은 피드백을 두셨다. 석훈 선배님은 실제로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사회 문제에 고민도 많은 분이다. 선배님을 만나 피드백을 들으면서 전형적인 그림에서 좀 더 살아있는 아버지 캐릭터로 바뀌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영화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상영됐다. 영화 '얼굴'로 토론토를 찾은 박정민과 연상호 감독은 '세계의 주인'에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윤 감독은 "말도 안 되게 도와주셔서 감지덕지한 순간들을 맞고 있다. 독립영화를 3편째 하고 있어서 흥행은 '세계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와 같은 먼 꿈 같은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정민 배우나 연상호 감독님도 그렇고 작품을 지지해주는 분들의 발언은 단순히 저나 영화에 대한 칭찬이 아닌,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 이야기하고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실존하는 '주인'에게 손을 내밀어줬다는 온기를 느꼈다. 흥행이라고 하긴 부끄럽고 많은 분이 봐주시길 바란다. 용감히 내밀어준 손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윤 감독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더불어 아역 배우를 스크린 위에 살아 숨 쉬게 하는 '3대 마스터'"라는 극찬을 보낸 바 있다. 또한 봉 감독은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와 함께 '전 세계에서 주목해야 할 차세대 감독 20인' 중 유일한 한국 감독으로 윤가은 감독을 손꼽으며 "새로운 세대의 한국 여성 감독 중 가장 흥미진진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외에도 여러 거장의 공개적 지지를 받는 윤 감독은 "그분들에게 폐가 아닐까. 덕분에 제 팬심을 채우는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또한 "선배 영화인들이 이룩해낸 것들 후배 입장에선 모방하고 변주하며 그들의 길을 좇았다. 바뀌어 가는 영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걸 찾을까 고민한다. 선배 영화인들이 아무리 좋은 걸 남겼다고 해도 그대로 계승하는 건 게으른 것이라는 고민이 남아 있다. 그분들이 이룩하신 것 이상으로 이룩해야 후배들에게 또 다른 본보기가 될 것 같다. 무거운 숙제 같아서 압박감이 몰려온다"고 털어놓았다.
'세계의 주인'은 오는 22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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