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원작 소설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The Ax, 도끼)'이다. 이병헌은 25년간 헌신한 제지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뒤 재취업 전쟁을 시작한 구직자 유만수 역을 맡았다.
이병헌은 "제의를 받은 건 촬영 들어가기 반년 정도 전이다. 물론 예전에 저한테 '도끼'라는 영화를 나중에 찍을 거라고 얘기한 적은 있다. 그런데 그때는 완전히 미국영화였다. 그러다가 한국영화로 만들기로 하면서 저한테 대본을 줬다"고 회상했다. 이어 "대본은 언제 볼 수 있냐고 했더니 아직 쓰지 않았는데 예전에 썼던 미국 대본을 한국어로 번역한 건 있다더라. '그거라도 보겠냐'고 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봤더니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더라. 문화와 환경이 다르지 않나. 영어를 한국어로 단지 바꿔만 놓으니 현실감이 없더라. 극 중 인물들이 어디 사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지도 모르겠더라. 그냥 미국 대본 읽는 것 같아서 공중에 붕 뜬 느낌이었다. 한국어 버전으로 바뀌면 그때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국어 작업이 완료된 대본을 봤을 때는 "한국 상황에 맞춰 놨으니까 현실감 있고 캐릭터도 쏙쏙 들어왔다"고 기억했다.
이번 작품은 주인공들의 처절한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풀어 블랙 코미디 장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잔혹성, 선정성 있는 작품을 주로 보여왔던 박찬욱 감독. 이에 이병헌은 "내가 읽은 게 맞는 건가 싶더라. 감독님한테 '이거 웃기는 거죠?' 그랬다. '웃기면 웃길수록 좋지' 그러더라. 내가 바로 읽었구나 싶었다. 작업하면 재밌겠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즐거웠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막 냈다. 감독님과의 예전 작업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동경비구역 JSA' 할 때만 해도 우리가 모여서 아이디어를 배틀하듯이 냈다. 그땐 질보다 양이었다. 10개 내면 적용되는 건 하나 정도였다. 이번에는 얘기를 할 때마다 '그렇게 하면 재밌겠다'며 다 적용시키더라. 나중에 약간 겁이 났다. '책임 전가하려고 그러나' 싶었다. '이제 좀 말을 아껴야지' 하면서 후반부에는 아이디어를 거의 안 냈다"며 폭소케 했다.
이병헌은 LA 라크마에서 박 감독의 공로상 수상 시상자로 나섰던 때의 일화를 들려주며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느 "그때 박찬욱 감독과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독님은 한 편을 말아먹고 두 번째 시나리오를 준비했고, 나도 두 편을 말아먹고 세 번째 영화의 기술 시사회 현장이었다. 조감독이 와선 '누가 찾는다'고 해서 갔더니 포니테일로 머리를 뒤로 묶은 누가 있더라. 그때부터 패션도 독특했. 비호감이었다"며 웃었다. 이어 "자기가 시나리오를 주고 싶은데 한번 읽어봐 달래서 '알겠다'고 하고 받았다. 그런데 왠지 느낌은 안 하게 될 거 같더라. 그렇게 망하고 그 사람이 갑자기 또 시나리오를 주길래 봤더니 재밌었다. 저 분도 나도 계속 망해서 더 망할 것도 없겠다며 했는데, 그게 '공동경비구역 JSA'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는 떨면서 그런 스피치를 했는데 관객들이 기립해서 박수를 쳐줬다. 제가 스피치했지만 뿌듯하고 신났다. 그 스피치를 끝내고 박 감독님과 포옹하고 공로상을 드렸다. 잊지 못할 감독님과 저의 역사"라고 기억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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