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부산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어쩔수가없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이 참석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갑작스레 해고된 후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박찬욱 감독의 신작으로, 원작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이다.

극 중 제지회사 실직자들은 재취업하기 위해 분투한다. 박 감독은 "원작 소설을 읽으며 쉽게 감정 이입을 했다. 종이 만드는 일이 대단하다고 보통 생각하지 않는데, 주인공들은 '인생 자체'라고 말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도 어찌 보면 삶의 크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일도 아니고 2시간짜리 오락거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일에 다 쏟아부어 인생을 통째로 걸고 일하지 않나. 그렇기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제가 제지업계에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이 인물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공감 포인트를 밝혔다.

박 감독은 "업계가 어렵고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팬데믹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더 더딘 것 같다. 그러나 영영 이런 상태에 머물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가 이 구렁텅이, 늪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헌은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만수가 아주 개성이 강하거나 특별난 캐릭터는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런 평범한 인물이 큰 상황에 부딪히고 그 상황을 이겨가기 위해 극단적인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실행해 가면서 변해가는 과정이 있다. 모든 극단적 상황을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 상태일까에 집중했다. 그걸 어떻게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지가 촬영 내내 저한테 큰 숙제였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으로 각종 영화제에 다녀온 '어쩔수가없다' 팀. 이병헌은 "영화제 때문에 베니스, 토론토를 다녀오면서 '영화제에서는 제지업이지만 우리 업계에서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종이의 쓰임이 사라져 간다는 건 제지업계가 마주한 어려움이다. 제지업계 어려움처럼 영화업계도 어려움이 있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건 극장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이 어떻게 이 어려움을 어떻게 타개하고 다시 사랑받는 장소가 될 수 있을지는 모든 영화인들이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로, 피부로 느끼진 못 하지만 이 영화 후반부에서 AI에 관한 문제 제기도 한다. AI도 배우나 감독들에게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공통점을 저도 느꼈다"고 전했다.

손예진은 미리 캐릭터에 대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 캐릭터라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엄마처럼, 아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보이는 모습이 과장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야기가 가진 비극적 순간들, 극적인 상황들에 미리는 어떤 생각으로 이 과정을 지켜볼까. 낙천적인 미리는 현실적으로 돌파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손예진은 영화는 7년 만이라고.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자주, 오래 영화 작업으로 배우로서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불안함이 있다. 요즘 워낙 영화의 현실이 안 좋다. 그래서 7년 만에 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박찬욱 감독님 같은 감독님들이 작품을 더 만들어 주셔야 할 것 같다"며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박희순은 체감하고 있는 영화업계 어려움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나름 영화배우로 먹고 살다가 이제는 영화만 기다리다가 죽겠다고 했다.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영화만 해서 살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 산업이 안 좋아진 것 같다. 박찬욱 감독님을 비롯해 영화인들이 좀 더 힘을 내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 준다면 관객들이 반응해서 영화산업이 다시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염혜란은 실직한 후 무기력하게 변해버린 남편 범모의 모습이 못마땅한 아내 이아라 역을 맡았다. 그는 "이 분들과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꿈 같다. 부산은 상징적인 도시였다. 언젠가 영화제로 와보고 싶었다. 낭만과 도심을 함께 갖고 있는 도시"라고 부산영화제 참석 소감을 밝혔다.
염혜란은 촬영 비하인드를 전했다. 그는 "고추잠자리 신 같은 경우 완벽한 콘티가 나와 있었는데도 현장에서 많은 아이디어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고추잠자리를 생각하고 계셨다. 쉬는 시간에 계속 틀어놓으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현장에서 선배님들의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서 더 풍부해졌다. 힘들지만 재밌게 찍었다"고 전했다.

이병헌은 "긴 시간 이 작업을 함께한 배우로서, 저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세 번째 볼 때 다르더라. 감독님이 왜 그때 그런 주문을 했는지 깨달음이 생기더라. 그 만큼 큰 스크린으로 그 디테일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봐야할 이유가 너무나 분명하다. 내년 설이나 추석 명절에 TV로 보기 보다 극장에서 보시길 추천한다"고 강조했다.
손예진은 "처음 보면 감독님의 미쟝센과 병헌 선배의 압도적 연기가 보일 거고, 두 번째 보면 제가 조금 더 보일 거고, 세 번째 보면 희순 선배와 혜란 언니, 성민 선배의 연기가 보일 거다. 극장에서 적어도 두 번 보길 추천드린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성민은 "제 출연작 중에 가장 잘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어쩔수가없다'는 오는 24일 정식 개봉한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7일부터 26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진행된다.
부산=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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