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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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박 감독의 뛰어난 미쟝센과 더불어 배우들의 압도적 열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 감독과 배우들은 극장에서 꼭 봐야할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17일 부산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어쩔수가없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이 참석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갑작스레 해고된 후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박찬욱 감독의 신작으로, 원작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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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제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이라는 건 아실 거다. 한국에서 선보이게 되어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부산영화제에 오랜만에 와서 설렌다. 게다가 30주년이라니 더 설렌다.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떨리는 마음을 안고 개막식에 참석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극 중 제지회사 실직자들은 재취업하기 위해 분투한다. 박 감독은 "원작 소설을 읽으며 쉽게 감정 이입을 했다. 종이 만드는 일이 대단하다고 보통 생각하지 않는데, 주인공들은 '인생 자체'라고 말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도 어찌 보면 삶의 크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일도 아니고 2시간짜리 오락거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일에 다 쏟아부어 인생을 통째로 걸고 일하지 않나. 그렇기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제가 제지업계에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이 인물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공감 포인트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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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이번 작품을 오래전부터 가장 만들고 싶은 이야기로 꼽기도 했다. 그는 "원작을 읽고 망설이지 않고 바로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 이미 있는 것과 아직은 없지만 거기에 내가 보탤 만한 것이 보였다"고 밝혔다. 그것은 바로 코미디와 더불어 새로운 서사였다. 박 감독은 "주인공이 하는 일을 가족들이 눈치채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이야기에 훨씬 더 새롭고 대답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2가지가 저를 사로잡아서 이 작품을 붙들고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 외에도 이 소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이야기가 큰 매력이었다. 개인의 이야기와 사회적 이야기가 완전히 결합해서 안으로도 밖으로도 향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거대한 역설이랄까"라며 영화의 메시지를 짚었다.

박 감독은 "업계가 어렵고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팬데믹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더 더딘 것 같다. 그러나 영영 이런 상태에 머물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가 이 구렁텅이, 늪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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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25년간 헌신한 제지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뒤 재취업 전쟁을 시작한 구직자 유만수 역을 맡았다. 그는 "영화 촬영을 마치고 이렇게 기대하면서 기다렸던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다렸던 영화"라고 작품을 향한 애정을 표했다. 이어 "제 작품이 부산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적 있었나 찾아봤더니 없더라. 처음으로 개막작으로 오게 되어 떨린다"며 설렌 마음을 드러냈다.

이병헌은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만수가 아주 개성이 강하거나 특별난 캐릭터는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런 평범한 인물이 큰 상황에 부딪히고 그 상황을 이겨가기 위해 극단적인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실행해 가면서 변해가는 과정이 있다. 모든 극단적 상황을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 상태일까에 집중했다. 그걸 어떻게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지가 촬영 내내 저한테 큰 숙제였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으로 각종 영화제에 다녀온 '어쩔수가없다' 팀. 이병헌은 "영화제 때문에 베니스, 토론토를 다녀오면서 '영화제에서는 제지업이지만 우리 업계에서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종이의 쓰임이 사라져 간다는 건 제지업계가 마주한 어려움이다. 제지업계 어려움처럼 영화업계도 어려움이 있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건 극장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이 어떻게 이 어려움을 어떻게 타개하고 다시 사랑받는 장소가 될 수 있을지는 모든 영화인들이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로, 피부로 느끼진 못 하지만 이 영화 후반부에서 AI에 관한 문제 제기도 한다. AI도 배우나 감독들에게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공통점을 저도 느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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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은 남편 유만수의 실직에 취미인 댄스와 테니스를 관두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이미리 역을 맡았다. 그는 "부산영화제에서 제 영화를 개막작으로 보게 되어 영광스럽고 행복하다. 오늘 일반 관객들과 함께 보게 되어 설레고 기대된다.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뜻깊은 마음을 표했다. 부산에 대한 느낌을 묻자 "부산은 영화와 밀접한 도시 같고, 그 중심에 영화제가 있는 것 같다. 살기도 좋고 이국적인 모습도 많다"며 "저는 부산에 와서 상국이네 떡볶이를 먹어야 한다. 맛집이 많은 아름다운 곳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손예진은 미리 캐릭터에 대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 캐릭터라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엄마처럼, 아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보이는 모습이 과장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야기가 가진 비극적 순간들, 극적인 상황들에 미리는 어떤 생각으로 이 과정을 지켜볼까. 낙천적인 미리는 현실적으로 돌파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손예진은 영화는 7년 만이라고.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자주, 오래 영화 작업으로 배우로서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불안함이 있다. 요즘 워낙 영화의 현실이 안 좋다. 그래서 7년 만에 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박찬욱 감독님 같은 감독님들이 작품을 더 만들어 주셔야 할 것 같다"며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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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순은 잘나가는 제지회사 반장 최선출 역을 맡았다. 그는 "아름다운 자리에 취한 모습을 보이게 되어 '어쩔 수가 없다'. 감독님이 저를 선출 역으로 선출해줬기 때문에"라며 극 중 캐릭터를 연상케 하는 위트있는 인사로 웃음을 자아냈다.

박희순은 체감하고 있는 영화업계 어려움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나름 영화배우로 먹고 살다가 이제는 영화만 기다리다가 죽겠다고 했다.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영화만 해서 살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 산업이 안 좋아진 것 같다. 박찬욱 감독님을 비롯해 영화인들이 좀 더 힘을 내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 준다면 관객들이 반응해서 영화산업이 다시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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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은 제지업계로의 재취업이 절실한 업계 베테랑 구범모 역을 맡았다. 이성민 역시 극 중 내용에 공감하며 영화계를 비롯해 사회가 직면한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그는 "배우를 대체할 수 있는 대단한 기술이 생긴다면 저도 직업을 잃지 않을까.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직업을 잃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두려움이 우리 영화가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모두가 극 중에 실업자들처럼 그런 일을 겪지 않을까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염혜란은 실직한 후 무기력하게 변해버린 남편 범모의 모습이 못마땅한 아내 이아라 역을 맡았다. 그는 "이 분들과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꿈 같다. 부산은 상징적인 도시였다. 언젠가 영화제로 와보고 싶었다. 낭만과 도심을 함께 갖고 있는 도시"라고 부산영화제 참석 소감을 밝혔다.

염혜란은 촬영 비하인드를 전했다. 그는 "고추잠자리 신 같은 경우 완벽한 콘티가 나와 있었는데도 현장에서 많은 아이디어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고추잠자리를 생각하고 계셨다. 쉬는 시간에 계속 틀어놓으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현장에서 선배님들의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서 더 풍부해졌다. 힘들지만 재밌게 찍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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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으며, 아시아에서는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다. 박 감독은 "한국이고 아시아 프리미어다. 원작 소설이 미국이지만 한국으로 옮겨오면서 집에 대한 집착, 가부장적인 제도와 사회 풍습으로 인한 만수의 한계와 어리석음 등을 더 각별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나라 관객보다 여러분이 잘 이해하고 공감할 것이다. 혀를 끌끌 차며 '아이고' 하면서 볼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긴 시간 이 작업을 함께한 배우로서, 저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세 번째 볼 때 다르더라. 감독님이 왜 그때 그런 주문을 했는지 깨달음이 생기더라. 그 만큼 큰 스크린으로 그 디테일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봐야할 이유가 너무나 분명하다. 내년 설이나 추석 명절에 TV로 보기 보다 극장에서 보시길 추천한다"고 강조했다.

손예진은 "처음 보면 감독님의 미쟝센과 병헌 선배의 압도적 연기가 보일 거고, 두 번째 보면 제가 조금 더 보일 거고, 세 번째 보면 희순 선배와 혜란 언니, 성민 선배의 연기가 보일 거다. 극장에서 적어도 두 번 보길 추천드린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성민은 "제 출연작 중에 가장 잘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어쩔수가없다'는 오는 24일 정식 개봉한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7일부터 26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진행된다.

부산=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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