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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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가 연상호 하지 않았다. 스케일 크고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를 선보여왔던 연상호 감독이 이번에는 약 2억원을 들린 저예산 영화 '얼굴'을 선보이는 것. 주연 박정민은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밀도 있는 서스펜스와 캐릭터에 몰입한 배우들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10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영화 '얼굴'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토론토국제영화제 참석으로 인해 연상호 감독과 배우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은 화상 연결을 통해 한국 기자들을 만났다.

'얼굴'은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인 아버지 임영규의 아들 임동환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시신 발견 후 그 죽음 뒤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

연상호 감독은 토론토 분위기에 대해 "토론토 이곳에서 박정민은 스타"라더니 "'이곳에서' 아니다. '이곳에서도'다"라며 웃음을 안겼다. 이어 "박정민이 토론토의 저스틴 비버라고 임성재 배우가 그러더라"며 폭소케 했다. 그러면서 "1800석 정도 되는 극장에서 영화를 봤는데, 1800석 극장이 꽉 채워져서 다같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기쁨이 뭔지 되살아났다. 큰 스크린을 통해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깜깜한 공간에서 몰입해서 보는 경험이 좋았다"며 관객들의 성원에 감사를 표했다.

박정민은 "인기가 한층 올라갔구나. 토론토에서 한국 동포의 힘을 느낄 줄 몰랐다"고 인정해 폭소케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이 이야기를 접할 저스틴 비버 선생님께 양해드린다"고 말해 웃음을 더했다. 화상을 통해 한국의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임성재는 "잠깐 제가 뭐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좋다"며 폭소를 자아냈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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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성과나 성취에 집착하는 나는 어디서 오는가'에서 시작해서 70년대 고도 성장한 한국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시각적 예술을 하는 임영규를 세팅하고 그 반대에 있는 정영희라는 인물을 만들면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내내 정영희의 얼굴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연상호 감독은 "에너지가 강한 임영규라는 사나이의 뒤틀린 내면으로 관객들을 안내해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임영규의 뒤틀린 내면의 동력은 자신의 힘으로 아내 정영희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을 임영규의 뒤틀린 내면으로 안내하기 위해서는 임영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임영규처럼 정영희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상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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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은 젊은 시절 임영규와 아들 임동환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1인 2역을 맡았다. 젊은 임영규는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도장을 파며 성실히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임영환은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좇기 시작한 아들이다.

실제로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인 박정민은 "눈이 불편하신 시각장애인이 뭔가를 만드는 영상을 보면서 준비했다. 그러다 든 생각이 있다. 저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본 적 없지만 가족으로서는 꽤 오랜 시간 살아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가 되짚게 되는 행동 패턴들이 있더라.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준비 과정과 촬영에서 이 작품이 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의도치 않게 이 작품이 선물이 돼줬다"며 작품을 향한 애정을 표했다.

1인 2역을 한 박정민은 "아들 역할을 할 때는 크게 고려할 부분이 없었던 것이 제 앞에 있는 모든 배우가 짜증을 유발했다"고 밝혀 웃음을 안겼다. 하지만 "젊은 아버지 역할을 할 땐 고민이 있었다. 아버지를 연기할 땐 조금 더 과감해져 보자고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극 중) 과거 장면들은 누구도 보지 못했던 시간이다. 아버지의 기억 속 장면일 수 있겠다 싶었다. 기억이 왜곡되고 증폭돼 있는 상황에서 연기하는 거라서 조금은 과장되게 연기해도 좋다고 판단했다. 만화적이어도 충분히 납득될 거라 생각했다"며 "저는 연기할 때 생각이 많은 편인데 이번에는 과감한 시도를 해서 저조차도 보지 못했던 얼굴을 보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가진 채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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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효는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파는 전각 장인인 현재의 임영규를 연기했다. 권해효는 "외적인 접근은 특별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외적으로 어떻게 보일까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작고한 장인어른이 시각장애인이었던 권해효는 "제가 15년 넘게 장인어른과 함께 살아오며 봐왔기 때문이다"라며 "준비하는 것보다 제가 옆에서 오랜 시간 보고 느꼈던 점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태생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시각 예술을 한다는 점을 관객들이 믿을 수 있을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됐다"며 연기적 고민을 털어놓았다.

신현빈은 청계천 의류 공장 청풍피복의 직원 정영희 역을 맡았다. 정영희는 임영규의 아내로, 40년 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백골로 발견됐다. 박정민과 부부 연기 호흡을 맞춘 신현빈은 "'변산'에서 연기 호흡을 맞췄는데, 오랜만에 다시 만나 부부로 연기하게 됐다. 저희가 압축적으로 짧은 시간에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함께하는 장면이 그렇게 편안하지만은 않은 장면이 있었다. 서로를 알고 있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었다. 서로 얘기하지 않아도 받아주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연기에 도움이 됐다. 함께 같은 작품을 한다는 게 큰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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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제작비 2억원대 저예산으로 제작됐다. 연상호 감독은 "저예산을 생각했을 땐 처음에 1억원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물정을 잘 모르는 거였더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핸드폰으로 찍거나 과거 장면은 재연드라마처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면 후지게 나올까봐 두려웠다. '후지게 나오면 내 면이 안 서는데' 생각하다가 그 생각이 잘못됐단 걸 알았다. 면이 안 설까봐 못하는 거면 면만 세우다 끝나겠다고 생각했다. 후지더라도 해보자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첫 단추부터 박정민 배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같이했던 스태프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퀄리티가 이미 제 예상보다 높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미안하다. 공식 사과드린다"며 웃음을 안겼다. 이에 박정민은 "용서한다"고 응해 웃음을 더했다.

연상호 감독은 "전설적인 아시아 영화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는데, 그 영화들이 대부분 저예산 영화다. 저예산 영화가 줄 수 있는 힘이 따로 존재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저예산 제작 시스템에 대해 "요즘에는 이걸 시스템화 할 수 없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한 번의 실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스템화할 수 있을지 대충 계산해봤는데 20억은 있어야겠더라. 20억 나올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하는데, 고민 중이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확실한 건 이 형태의 작업, 지금까지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는 다른 과정으로 계속 영화가 나왔으며 좋겠다는 것이다. 시스템화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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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너무 감사해서 이번 작품처럼 흥행에 목 말라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이어 "예산이 워낙 작다 보니 손익분기도 낮긴 하다. 도와주신 분들이 많이 가져가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흥행에) 간절한 적 없었다. 좋은 의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흥행했으면 좋겠다. 내일 개봉인데 이렇게 흥행에 목 말라본 영화는 처음이다. 잘 좀 부탁드린다"고 읍소했다.

박정민은 "감독님이 저희나 스태프들이 도와줘서 흥행됐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저도 그런 마음이지만 그것보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딥하게 체험해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개런티로 출연한 박정민은 "지분, 러닝개런티 개념이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이 시대에 해볼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를 보시고 진득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잘 되면 어느 정도 받겠다. 감사하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얼굴'은 오는 11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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