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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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차은우·목소리는 안효섭…병맛인 줄 알았던 기묘한 조합 '케이팝 데몬 헌터스'[TEN스타필드]
《김지원의 까까오톡》
까놓고, 까칠하게 하는 오늘의 이야기.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 이슈를 까다로운 시선으로 비평합니다.


걸그룹 트와이스를 제치고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하고, 대형 공연장을 거뜬하게 채워버리는 걸그룹이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헌트릭스의 이야기다. K아이돌이 세상을 구한다는 다소 '병맛'스러운 설정이 가장 높은 진입 장벽인 이 작품. 이병헌, 안효섭 등 탄탄한 더빙 라인업, 차은우를 연상시키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완성도 높은 음악과 안무에 뭉클한 감동까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호평을 얻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정상 아이돌이자 악령을 퇴치하는 헌터인 헌트릭스(루미, 미라, 조이)가 아이돌 라이벌이자 악령인 사자보이즈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워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하루만인 지난 6월 21일 미국, 영국, 호주, 일본, 프랑스, 독일 등 22개국에서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3일째는 31개국 1위, 4일째는 41개국 1위까지 도약했다. 7월에 들어선 후인 7월 1일에도 1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톱10 사이트에서도 6월 23일~29일 기준 한국 1위를 비롯,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OST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빌보드는 지난 6월 30일 차트 예고 기사를 통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앨범이 '빌보드 200'에 8위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또, 지난 6월 28일 기준 '데일리 톱 송 글로벌' 차트에서 'Golden' 7위, 'Your Idol' 11위, 'Soda Pop' 17위, 'How It's Done' 19위, 'Free' 34위, 'What It Sounds Like' 39위, 'Takedown' 57위, 'TAKEDOWN(트와이스 정연·지효·채영)' 100위를 기록했다. '데일리 톱 송 미국' 차트에서는 'Your Idol' 6위, 'Golden' 8위, 'How It's Done' 21위, 'Soda Pop' 29위로 집계됐다.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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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다문화가 합작된 결과물이란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공개 플랫폼은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이고, 제작은 일본계 미국 기업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했고, 내용의 원천은 K팝과 한국 문화다. 자칫하면 끔찍한 혼종이 됐을 아슬아슬한 조합. 하지만 애니메이션, 음악, 배우 캐스팅 등 각각의 요소가 높은 수준으로 완성됐으며, 이들이 잘 어우러져 성공적인 하이브리드 작품으로 탄생됐다는 평가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몬스터 호텔' 시리즈,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익숙하고도 세련된 그림체를 만들었다. 주인공 루미, 미라, 조이는 세상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지만 평소엔 라면과 과자를 좋아하고 캐릭터 잠옷을 입는 그저 왈가닥 소녀들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친근한 모습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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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안무는 테디가 수장으로 있는 더블랙레이블이 상당수 작업했다. 극 중 헌트릭스가 목표를 이루는 하이라이트 장면에 나오는 'Golden'(골든), 'How It's Done'(하우 잇츠 던), 저승사자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Soda Pop'(소다 팝), 'Your Idol'(유어 아이돌) 등이 더블랙레이블 프로듀서진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대니 정은 사자보이즈 베이비 역을 맡아 가창도 했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칼군무' 안무에는 리정이 참여했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실제 있는 그룹을 캐릭터화한 그룹이라도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트와이스 정연, 지효, 채영은 OST 'TAKEDOWN'(태권)을 부르기도 했다.

제작진과 배우진에 한국계가 다수 참여했다는 점은 한국 문화와 정서를 잘 담을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한국계 캐나다 감독 매기 강은 "어렸을 적부터 다양한 아시아 문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며, 항상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문화 유산의 아름다운 면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동시에, 저 자신을 비롯해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만드는 여정에 착수했다"라고 밝혔다. 공동 연출인 크리스 애플한스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이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는 단절되고, 사람 간 교류를 찾아보기 힘들 때였다. 그런데 BTS가 온라인 콘서트를 개최하고,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 수백만 인구가 갑자기 본인의 집에서 'Dynamite'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세상이 조금 밝아진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사진=넷플릭스 유튜브 영상 캡처
사진=넷플릭스 유튜브 영상 캡처
제작진은 실제 K스타들을 분석해 캐릭터를 구상했다. 헌트릭스는 블랙핑크, 트와이스, ITZY 등을 참고했고, 사자보이즈는 BTS, TXT, 스트레이키즈 등을 모델로 삼았다. 그 가운데 헌트릭스 루미는 제니의 'Kill This Love' 스타일링에서, 사자보이즈 지누는 차은우, 남주혁 등 K배우들에게서, 사자보이즈 베이비는 BTS 지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성우 및 보컬도 모두 한국인 탤런트로 캐스팅됐는데, 특히 이병헌은 메인 빌런 귀마 역을 맡아 한국어, 영어 더빙으로 열연했다. 안효섭은 사자보이즈 리더 진우 역으로 목소리 연기를 했다.

작품 곳곳에 담긴 한국적 요소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빌런 사자보이즈는 저승사자를 연상케 한다. 극 중에서 한국어로 된 간판, 과자, 그리고 북촌, 남산 타워도 찾아볼 수 있다. 그룹 블랙핑크, 방탄소년단 등이 한복을 모티브로 한 무대 의상을 입었던 것처럼, 극 중 아이돌 그룹도 전통복식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을 입고 전통 장신구를 연상케 하는 액세서리로 치장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플래카드, 팬사인회 등 K팝 팬덤 문화도 녹여냈다. 극 중 호랑이와 까치 캐릭터도 등장한다. 이는 호랑이와 까치를 소재로 한 한국 전통 민화 '호작도'를 연상케 한다. 호랑이와 까치는 귀여움을 담당하는 신스틸러로 활약하며 시청자들에게 미소를 안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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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웃음과 감동을 주는 애니메이션의 미덕을 지녔다는 점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호평받는 가장 큰 이유다. 그림, 음악이 아무리 좋더라도 결국 스토리가 받쳐 주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 주인공 루미가 자신의 약점과 트라우마를 극복, 세상을 구하고 내면의 성장도 이뤄낸다는 전개가 감동을 선사한다. '겨울왕국', '모아나' 등에서 봤던 성장 스토리도 연상케 한다. 악령들과의 액션신도 경쾌하고 속도감 있어 보는 재미를 높인다.

시청자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포인트는 어쩌면 K아이돌이 퇴마한다는 다소 '손발이 오그라드는' 설정이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되면 금세 몰입하게 될 만큼 스토리가 리드미컬하고 완성도가 높다. 넷플릭스 측은 "한국 전통 문화의 요소들과 케이팝의 트렌디한 요소들이 잘 어우러진 웰 메이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세계적 인기는 '훌륭한 이야기는 언어 문화 포맷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사랑받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좋은 예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한 방송계 관계자도 "창의적인 설정과 직관적인 서사 구조, 그리고 캐릭터, 음악 등 K팝의 인기에만 편승하지 않은 퀄리티 높은 요소들은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라고 평가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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