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내가 이 무대에서 가장 빛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이제는 '어떻게 하면 내가 작품의 일원으로서 완성도를 더 높일까'에 대해 생각해요."

뮤지컬 배우 카이가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뮤지컬 '팬텀'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기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카이는 이 작품에서 천재적인 음악 재능이 있지만 흉측한 외모 때문에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극장 지하에 숨어 사는 주인공 팬텀(에릭) 역을 맡았다. 카이는 이 공연이 국내에서 초연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출연하고 있다.

카이는 "지금도 마음만큼은 처음 시작했던 그때와 같다"면서도 "지금은 나 자신보다는 작품을 더 내세운다. 상대 배우와 배역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한다"고 말했다.
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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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른 작품으로, 극작가 아서 코핏과 작곡가 모리 에스톤이 만들었다. 1991년 초연해 국내에서는 2015년 처음 선보였다. 국내에서 초연을 한 지 10년이 흐르면서 작품도 변했다. 스토리의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지만, 최근 콘텐츠 트랜드에 맞게 작품의 스토리 흐름이 다소 빨라지면서 공연 시간이 약 15~20분 정도 줄었다.

카이는 재연을 제외한 '팬텀'의 모든 시즌에 참여하고 있다. 카이는 "'팬텀'은 매 시즌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게 만드는 작품"이라며 "관객들이 이전 시즌까지는 강렬함을 제일 크게 느꼈다면, 이번에는 에릭의 순수하면서도 연약한 부분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고민했다"고 말했다.
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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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계의 다작의 배우로 꼽히는 카이도 '팬텀'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다. 카이는 "(다른 대형 공연장과 비교해 세종문화회관은) 좌우로 4m 정도가 더 큰데, 이건 성인의 너댓걸음에 해당한다"며 "뛰어다니며 연기를 하다 보니 심장에 가해지는 압박이 확실히 달랐다"고 했다. 그는 "'고작 이거 늘어났다고 왜 이렇게 힘들지'하면서 리허설 할 때 다른 배우들과 '야 너도 숨차?', '우리 나이 들었나 봐' 등의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팬텀 역할을 맡은 다른 배우로는 박효신과 전동석이 있다. 두 사람과 비교했을 때 카이의 연기는 뭐가 다른지를 묻자 그는 "제일 무서워하는 질문"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매력들이 있고 개인의 장점을 발현하면서 매 무대에 임하고 있기 때문. 카이는 먼저 박효신에 대해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음성이 있다"며 "그 음성으로 표출되는 팬텀은 몽환적 매력이 있다"고 했다.

이어 전동석 배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이 배우의 잘 생긴 외모에 사람들이 주목했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배우로서의 매력 또한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배우는 작품을 위해 많은 고민과 생각을 상당히 많이 한다. 사람들이 그저 잘생긴 배우로만 바라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 만큼 깊이 있는 질문과 답을 많이 하는 멋진 배우"라고 했다.
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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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는 팬텀 역할을 맡은 세 배우 중 유일한 성악 전공자다. 그는 "한국어에는 밑으로 빠지는 말들도 많고 뒤에서 먹는 발음도 있는데, 성악 발성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특징이 있는 한국어 대사를 노래하면 소리가 제대로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카이는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그는 "성악 발성을 하다 보면 이탈리아 말이나 외국어를 기반으로 벨칸토 발성을 쓰기 때문에 소리가 앞으로 쏟아져 나오는 연습을 하게 된다"며 "그래서 관람객들이 '소리가 다른 배우들과 다르다'고 여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카이는 무대 위에서 거듭 가면을 바꿔가며 연기를 한다. 가면은 팬텀의 심리를 보여주는 도구다. 이에 대해 카이는 "팬텀은 극장 지하 공간에 갇혀 살기 때문에 그곳에서 훔쳐봤던 공연들이 자신의 세상 전부다. 굉장히 공상적인 사람이고 비사회적인 사람이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고 전했다. 그는 "가면을 써야 이 인물의 심리가 부각되고 가면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아이덴티티가 된다"고 했다.
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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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책 그리고 다양한 형식의 공연으로 자칫 뻔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팬텀'이라는 작품이 무려 10년 동안 한국에서 롱런하고 있는 비결은 뭘까. 카이는 "원작자 가스통 루르의 소설 '오페라 유령'은 뮤지컬화 될 수 있는 요소가 많다"며 "가면을 쓴 상상 속 인물이 숭고한 사랑과 허무맹랑한 공상을 좇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뮤지컬 원작자 로버트 요한슨이 이런 부분을 극대화해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타 작품들과의 극명한 차이점도 있다. 카이는 "최근 일본 도쿄에 가서 오페라의 유령2 격인 '러브 네버 다이즈'라는 작품을 봤다. 좋은 음악과 아름다운 스토리가 있었지만, 대중들의 사랑 받기 위해 여러 장르의 음악을 부자연스럽게 혼합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런 요소들은 자칫 본질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뮤지컬이 종합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음악을 적절하게 배치하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작품의 롱런에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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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이면서 현재 모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카이는 최근 한국 뮤지컬에 새 역사를 쓴 최근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어워즈 6관왕 이야기를 꺼냈다. 신문을 통해 소식을 접했다는 그는 "많은 평론가가 이 작품의 성공 요인으로 순수성을 꼽는다"며 "요즘 콘텐츠는 자극적인 게 많다. 템포가 느리고, 사람의 순수함을 들여다보는 장르는 지루하다고 보는 추세인 것 같다"고 바라봤다. 그는 "흐름이 이러다 보니 순수한 사랑을 얘기하는 작품을 되려 신선해 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며 "최근 사랑을 받는 작품과 비교했을 때 '팬텀'은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무대 장치가 부각돼 있다"고 했다.
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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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텐아시아 기자 ligh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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