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차갑고 가혹하지만 투지는 뜨겁고 맹렬하다. 영화 '하얼빈'은 마냥 가볍게 즐기기는 어렵다. 독립투사들의 결의와 기개, 그리고 그들이 겪은 아픔이 가슴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안중근(현빈 분)이 이끄는 독립군 대한의군은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를 것을 주장, 전쟁포로로 잡힌 일본군들을 풀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공을 당한 대한의군은 큰 피해를입는다. 일려의 사건들로 인해 독립군 사이에서는 안중근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구사일생 끝에 살아 돌아온 안중근. 1909년 안중근을 비롯해 우덕순, 김상현, 공부인, 최재형, 이창섭 등 독립투사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다시 모이게 된다. 이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작전을 시작한다.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와 그의 동지들이 '거사'를 도모하기까지 과정에 집중했다. 안중근이 아닌 '하얼빈'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안중근이라는 한 인물보다 그와 그 주변 이야기를 좀 더 넓고 객관적으로 담으려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독립군들의 이야기가 눈물을 쥐어 짜내는 연출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하얼빈'은 담백한 시각을 유지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또한 안중근의 영웅적 행보보다 독립투사의 한 사람으로서 내면을 더 들여다본다. 포로를 풀어주거나 동지를 믿어주는 모습 등 그의 인간적 면모도 담았다는 점이 새롭다.

독립군을 소재로 한 시대극이기도 하지만 심리극에 가깝기도 하다. 뜻을 이어가는 독립투사, 밀정이 된 변절자, 일본군 등 캐릭터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영화적 스릴로 이어진다. 전개가 느슨해질 때쯤 밀정은 누구일까 라는 추리

한국, 몽골, 라트비아를 오간 3개국 로케이션의 웅장한 영상미도 눈길을 끈다. 영하 40도의 추위에 꽁꽁 언 호수에서 촬영한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도 뼈 시린 추위를 느끼게 한다. 사막을 건너는 독립투사들의 모습에서 독립을 향한 그들의 결연함이 전해진다.

현빈은 억압의 삶을 살아가는 고단함, 동지를 먼저 떠나보냈다는 죄책감, 독립의 의지를 다지는 강인함 등 안중근의 깊은 고통을 진득하게 그려낸다. 현빈의 비주얼보다 연기가 먼저 보인다. 조우진, 박정민의 힘 있는 연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