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이혁래 감독 인터뷰
"진심이었던 거지. 자료를 지키려는 마음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동아리 노란문은 그것들이 집약된 결정체다. 기억의 조각들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엮어낸, 동아리 노란문의 멤버이자 연출을 맡은 이혁래 감독의 진심은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단순히 1990년대를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의 한국 영화 산업과 청년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어쩌면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우리에게 그 문을 열고 그 마음을 마주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관객들을 만났던 이혁래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기억에 남았던 순간에 대해 언급했다. 이혁래 감독은 "20대 관객들이 되게 많이 울고, 본인의 경험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더라. 동아리의 정수가 90년대 초반에만 있던 것은 아니지 않나. 다양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함께 나누는 방식들이 있다. 노란문 이후에는 PC 통신이나 인터넷 카페가 있고. 젊은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서 되게 기분이 좋았다"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말했다.
극장용 영화가 아닌 넷플릭스와 작업을 시작한 연유를 묻자 "독립 다큐가 극장에 개봉해서 관객들을 만나는 과정이 너무 힘들더라.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제작 당시 출연하는 봉준호 감독의 조건을 언급했다. '노란문'의 출연 조건으로 봉준호 감독은 "그가 내세운 조건이 주인공이 아니라 1/n로 나온다는 조건이었다. 나도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웃음) 너무 뻔하지 않나. 그런 조건을 내세운 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됐다. 봉준호 감독이 유명해지고 위인전이나 TV에서 다큐멘터리가 나왔는데 제일 싫어할 만한 방식이었기에"라고 말했다.
영화의 구성 방식은 꽤나 담백하다. 동아리 멤버들의 구성이나 흩어짐에 거창한 이유를 늘어놓지 않고 과거의 조각들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혁래 감독은 "동아리의 사라짐에 대해서 가장 정직한 묘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동아리가) 없어지는 것이 사람의 노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특수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생명체처럼 다루는 것이 전략이었던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각자 다른 기억을 토대로 'Looking For Paradise'를 해석하는 과정도 별미다. 이혁래 감독은 "오프닝에 나오는 분이 유일하게 제목과 장면을 세세하게 기억했다. 주인공과 악당을 바꿔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라쇼몽'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재미 포인트이자 주제와 연결되는 부분이었다. 각자의 경험을 통해서 다르게 만들어온 노란문의 추억들이 30년 만에 만났을 때, 빚어지는 어긋남이 주제랑 맞닿아있다고도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Looking For Paradise'를 보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함께 그 자리에서 영화를 봤다. 이후, 우현 배우는 '백색인'(1994)에 투자하고 안내상 배우는 처음으로 필름에 기록된 연기를 했다. 우현 배우가 그 당시에 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하신 중요한 분이라서 외부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본인이 통과해온, 어쩌면 그립고 낭만이 가득했던 1990년대를 어떤 시대라고 생각하는지를 묻자 이혁래 감독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지금만큼이나 큰 변화가 있던 시기이자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던 시기다. 혼란스러웠지만 같이 즐거움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 행운이었다. 지금 젊은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렇지만 무언가 좋아하는 마음들을 공유하고, 시간이 지난 이후에 만남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꾹꾹 눌러 담아온 마음을 펼쳐놨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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