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개봉한 엄태화 감독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가 한국을 대표해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 도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17일 전해졌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으로 인해 홀로 남은 황궁 아파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 새롭게 뽑은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추악한 민낯을 보여주는 작품. 배우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등이 출연해 열연을 펼친다.

2019년까지는 외국어영화상(Best Foreign Language Film)이라고 불리던 이 부문은 이후 국제장편영화상(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으로 명칭을 바꿨다. 1957년 제2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신설된 부문이기도 하다. 명칭이 바뀌게 된 이유는 엄연히 공용어가 없는 나라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를 외국어라고 규정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일면서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부터 개칭하게 된 것이다.

최근 10년간의 아카데미 출품 기록을 살펴봤을 때, 7번의 후보 선정 실패와 2번의 예비후보, 1번의 수상이라는 결과를 알 수 있다. 그 말은 즉 1962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작품은 단 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아카데미의 최종 후보에 오르는 것은 힘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아쉬운 최종후보 탈락이지만 한국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들
영화 '버닝'(2018) 감독 이창동

‘버닝'은 리얼리즘의 대가 이창동 감독의 ‘시’(2010) 이후 8년 만에 복귀작이다. 영화는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이 오랜만에 어릴적 같은 동네에 살던 해미(전종서)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와 가난의 경계, 계층의 차이와 내면에 담긴 울분과 분노가 담긴 우리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다.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 이후 같이 돌아온 미스터리한 남자 벤(스티븐 연)의 등장으로 종수의 세계는 균열이 생기고야 만다. 소설가를 꿈꾸는 종수와 일을 하지 않음에도 부유한 벤 사이의 구조는 영화의 핵심이 된다.
영화 '헤어질 결심'(2022) 감독 박찬욱

‘헤어질 결심’은 형사 해준(박해일)이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수사하다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마주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보통의 유가족과늠 달리 특별한 요동을 보이지 않는 서래에게 자꾸만 관심이 생기는 해준. 두 사람의 넘을 듯 넘어서는 안 되는 사랑의 감정은 저 멀리 밀려오는 바다의 파도처럼 거칠고 세차다. 특히 ‘헤어질 결심’은 기존의 박찬욱 감독이 추구하던 폭력적이고 어두운 세계보다는 순화된(?) 버전의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와 같은 복수 3부작처럼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계가 아니라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헤어질 결심’. 물론 ‘헤어질 결심’에도 박찬욱만의 인장이 무수하게 찍혀있다.
‘헤어질 결심’이 고배를 맛본 제95회 국제장편영화상 후보로는 ‘아르헨티나, 1985’(아르헨티나), ‘클로즈’(벨기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독일), ‘말 없는 소녀’(아일랜드), ‘EO’(폴란드) 등 5편이 선정됐고,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수상하는 결과를 안았다.
◆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인 ‘기생충’의 수상
영화 ’기생충‘(2019) 감독 봉준호

‘기생충’은 계급 우화를 중심으로 한 블랙코미디로 전원백수로 살 길이 막막한 기택(송강호)의 장남 기우(최우식)이 고액 과외 자리를 얻어 박사장(이선균)의 집으로 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가족 전체가 박사장의 집에 몰래 직장을 구하게 되면서 웃기지만 슬픈 상황을 만들어냈다. 아카데미 이외에도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제 한 걸음을 뗐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상 후보로 오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과연 최종후보로 오를 수 있을까?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제56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제43회 하와이 국제영화제에도 초대받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재난 상황 속 홀로 남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람들의 추악한 욕망과 거듭된 질문을 하게 되는 작품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넘어야 할 산은 비록 크지만, 국제영화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를 기대해본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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