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섹시
전체적인 윤곽은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시키지만, 그 디테일은 섹시함이 ‘(타인의)시선 따윈 알게 뭐니’라고 노래하는 여성의 욕망을 드러낸다. 이 절묘한 공존은 이 곡의 구성원들의 독특한 조합 때문일 것이다. 안무, 가사, 뮤직비디오는 여성이 주축이지만, 프로듀싱과 작곡은 각각 남성인 프로듀서 조영철과 작곡가 이민수가 맡았다. 이들 중 가인을 제외한 네 명의 남녀는 아이유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를 제작한 바 있다. 아이유는 귀여운 여성에 대한 남성 판타지의 극단이었고,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섹시함에 터프함을 가미한 강한 여자들이었다. 가인은 이 네 남녀의 정확한 한가운데다. 남성들에게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섹시한 콘셉트는 남성 스태프가 짠 틀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 스태프는 그들의 시선으로 섹시함을 표현했다. 여성도 성관계에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 쾌감에 대한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드러내자 가인은 가련한 소녀도, 남성의 시각적 만족만을 위한 쇼걸도 아닌 무대를 지배하는 주인공이 된다. ‘피어나’는 주체적인 여성에 대한 시각을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주느냐로, 바깥의 시선에서 내면의 욕망의 문제로 옮긴다.
미스에이, 타인이 만들어놓은 좋은 여자의 기준
‘피어나’는 타인의 시선 대신 내면의 욕망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남자 없이 잘 살아’는 남자, 또는 사회가 원하는 좋은 여성의 기준을 더욱 더 강화한다. 출산과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인터넷에서는 남녀가 수많은 문제들로 논쟁을 하는 이 시점에서 두 곡의 등장은 어떤 징후처럼 보인다. 많은 남자들은 명품 백을 사느냐 마느냐에 따라,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개념녀’와 그렇지 않은 여성을 가른다. 반면 많은 여성들은 타인에게 폐 끼치지 않는 한 돈을 쓰고 싶은 곳에 욕먹지 않고 쓸 권리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 말한다. 주체적인 욕망과 타인의 시선이 정한 기준 안에 들어오는 것 사이의 대립. 남녀 모두 주체적인 여자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층위는 전혀 다르다. ‘피어나’가 예상치 못했던 카운터펀치인 이유다. 인터넷에서 끝없이 반복되던 남녀의 가장 중요한 논쟁점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것도 모두가 답 없는 논쟁을 할 때, 여성의 욕망을 놀라울 만큼 잘 드러내면서 남성도 즐길 수 있는 판타지의 접점을 만들면서 말이다. 강하거나, 세거나, 독특한 여성 걸그룹들의 노래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 지금, ‘피어나’가 대중음악 시장에서 얻는 반응은 지금 이런 목소리에 대한 수요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반대로 ‘남자없이 잘 살아’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주류 대중음악, 또는 걸그룹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시장에서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주 조금은 달라진 순간을 보고 있다. 그게 결과적으로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게 맴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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