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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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안나가 이해되지 않았어요. 원치 않은 결혼부터 출산까지 모든 행동들에 화가 났죠. 그런데 안나를 이해하다 보니 결국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됐어요."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연출가 알리나 체비크가 이같이 말했다.

20일 관객들과 만날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사랑과 결혼, 가족 문제 등을 다룬 작품이다. 체비크는 러시아 오리지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초연을 비롯해 이번 국내 공연 연출을 맡았다.

이번 시즌은 2019년 재연 이후 약 7년 만에 선보이는 라이선스 공연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귀환에 7년이라는 기간이 걸린 이유에 대해 체비크는 "코로나19 영향이 가장 컸고, 공연을 세우기 전 계약 등 생각할 것들이 많더라"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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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는 배우 옥주현의 '캐스팅 독식 논란'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타이틀롤 안나 역에 옥주현, 이지혜, 김소향 3인이 캐스팅됐으나, 옥주현이 38회 공연 중 무대에 23회 오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캐스팅 독식 논란'에 휩싸인 것. 이에 대해 체비크는 "배우들끼리 합의가 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남자 주인공 브론스키 역에도 배우 윤형렬, 문유강, 정승원이 트리플캐스팅됐다. 더블 캐스팅 구조를 보였던 초·재연과 다른 구성이다. 체비크는 "좋은 배우님들이 있으면 거절하기 힘들다"면서도 "관객분들이 다양한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도록 선택지를 드리는 것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배우들의 뉘앙스 차이를 느낄 수 있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만남인 만큼 체비크는 국내 배우들과 하나가 되어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는 "2018년도에는 (한국 배우 분들이) 브로드웨이 방식에 익숙해진 느낌이라 적응 기간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배우 분들이 연출적인 부분들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편하다"고 했다.

"한국 배우 분들은 정말 열심히 연습해요. 오전 10시부터 연습이 시작돼서 힘들다고 말할 법도 하고 제가 봐도 지친 모습들이 보이는데, 절대 그 말을 내뱉지 않더라고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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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가족 문제는 물론, 성별에 따른 사회의 이중잣대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체비크는 "요즘 사회가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오래된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남자가 저질렀다면 용서할 수 있는 일을, 여자가 했다는 이유만으로 용서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한다. 안나도 이런 이유로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 저항하게 됐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체비크는 소설로 안나를 만났을 당시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안나가 자식을 낳는 이유부터 납득이 되지 않아 싫어하는 감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작품을 보여줘야 되는 사람으로서 난감했다"고 털어놨다.

"내가 왜 이런 작품을 품에 안아야 되지", "이 여주인공을 어떻게 사랑하게 만들까"라는 걱정을 품었던 체비크는 안나를 이해하기에 나섰다. 체비크는 "내용을 전부 말해줄 수는 없지만, 안나는 사랑과 행복을 위해 자신의 인생에 대항했다.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울컥하면서 안나가 대단하게 느껴졌고, 그때부터 이 작품이 내 곁에 가장 가까이 머물게 됐다"고 첨언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자식 같은 작품이에요. 가끔씩 다른 작품들에도 신경을 쓰고 싶은데 '안나 카레니나'는 제가 계속 옆에 있어줘야 될 것 같고, 지켜봐 줘야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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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를 의식한듯 체비크는 "예술이라는 건 사람들을 뭉치게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의미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예술이라는 분야를 경계선 없이 교류하는 느낌이 들어서 작업하는 기간 내내 좋았어요. 한국 관객분들이 작품에 대해 어떤 후기들을 남겨 주실까 기대도 됩니다"

끝으로 체비크는 "비록 '안나 카레니나'가 19세기 작품이긴 하지만, 미디어나 SNS에서 성 차별적인 시선이 여전히 느껴진다"며 "한 사람을 향한 편견은 오늘날에도 이야기해 볼 만한 뜨거운 주제가 아닌가 싶다. 마냥 사랑 얘기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안나 카레니나'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는 3월 29일까지 공연을 펼친다.

정다연 텐아시아 기자 ligh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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