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주)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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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몇 장의 편지가 감미로움과 설렘, 긴장감을 동시에 조성했다. 짜임새 있는 연출과 촘촘한 스토리 덕에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픽션(허구)'이라는 사실을 깜빡할 정도였다. 유명 문인들의 두 번째 인생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지난 5일부터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뮤지컬 '팬레터'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가 배경이다. 당대 문인이었던 김유정과 이상 작가 등이 모여있던 '구인회'의 일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작된 팩션작이다. 팩션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한국식 신조어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끄는 건 세트장이었다. 이 세트장은 모던하면서 일본식 가옥 분위기를 되살린 미장센 역할을 했다. 공연 내내 조명과 그림자는 정세훈과 히카루(한국어로는 빛)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장치는 극 초반부터 관객들을 1930년대로 몰입시켰다.

작품은 천재 소설가 김해진과 그를 동경하는 작가 지망생 정세훈, 그리고 김해진의 뮤즈이자 비밀에 싸인 히카루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다룬다. 세 사람은 '편지'를 매개로 복잡한 관계성과 감정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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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김해진은 실제 1910년에 태어난 작가 이상(김해경)이 모델이다. 이상은 객혈로 인해 황해도에서 요양하는데, 그 무렵 기생 금홍과 만난다. 금홍은 이상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다. 이상은 폐결핵과 싸우다 도쿄대 부속병원에서 죽었다.

팩션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새로운 시나리오를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다. 이에 맞게 1막에서부터 사실에 기반한 허구가 꾸며진다. 김해진이 정세훈의 '부캐'라고 할 수 있는 히카루를 여성이라고 오해한 채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고 만남을 바란다는 설정이다.

1막 속 김해진은 히카루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를 놀라운 필력을 지닌 여성으로 단단히 오해한다. 그 과정에서 구인회 일원들이 뽐내는 입담은 관객이 당대 작가들과 내적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2막에서는 히카루의 정체를 의심하는 인물들이 생겨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객혈하던 김해진이 히카루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모습은 관객의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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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대사는 예스럽고 시적인 매력이 있어 극의 고전미를 더했다.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문학을 대했던 구인회 일원의 열정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팬레터'는 한 편의 섬세한 문학 같은 무대로 호평받아 2016년 초연 이후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유려한 문장, 조화를 이룬 각 인물의 매력이 롱런의 이유로 꼽힌다.

'팬레터' 일부 배우는 지난 11일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작품에 대해 "서정적인 분위기와 심장을 울리는 예쁜 말들이 관람 포인트"라고 했다. 이들은 제일 눈여겨봐야 할 점으로 등장 인물간 관계성을 꼽으며 "각 인물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관찰하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다연 텐아시아 기자 ligh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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