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평론가가 추천하는 이 작품]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반쪽의 이야기'입니다.
'반쪽의 이야기'는 고등학생 엘리가 용돈벌이를 위해 동급생 폴의 러브레터를 대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따돌림 당하는 모범생 엘리, 동경의 대상인 퀸카 에스터, 사랑을 쟁취하고픈 폴로 점철되는 청춘들의 성장기로, '연애'보다 '사랑'에 관해 고찰하는 이야기입니다.

플라톤에서 따온 인용구로 거창하게 운을 떼기는 했지만 '반쪽의 이야기'는 실은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다. 그렇다고 달달한 청소년 애정물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여러모로 민감한 시절에 그들이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서로에게 접근해가는 지 알려주니 제법 진지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스쿼하미쉬라는 미국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유일한 고등학교가 있다. 중국에서 이민 온 엘리 추(레아 루이스)는 문학에 소질이 있는 유능한 소녀지만 다른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 이름에서 따온 '칙칙폭폭 추추'가 엘리의 별명이다. 영어가 서툴러 이렇다 할 벌이가 없는 아버지 에드윈(예성) 대신 주로 엘리가 친구들의 에세이 숙제를 대필해주고 푼돈을 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의 동급생 에스터(알렉시스 러미어)에게 호감을 느낀 폴(다니엘 디머)이 엘리에게 다가와 연애편지를 대필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사랑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 일 이후 엘리와 에스터와 폴, 세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눈부시게 전개된다. 엘리가 흉내 내는 시인이자 용맹한 검객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마저 울고 갈 지경이다. "사랑은 늘 자기를 속이면서 시작하고 남을 속이면서 끝난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연애라 부른다"(오스카 와일드), "사랑의 물결을 향한 갈망"(빔 벤더스), "내가 원하는 것은 숭배가 아니라 사랑이다"(조지 큐커), "사랑은 지저분하고 끔찍하고 제 맘 대로이고… 대담하다"(엘리 추), 그리고 마침내 사르트르까지 등장한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사람들로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옥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아마 감독이 평소부터 좋아하는 말들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현대사회의 총아격인 SNS 소통 방식을 충분히 활용하고 1970년대 추억의 가수 존 덴버의 'Annie's Song'과 시카고의 'If you leave me now'도 삽입곡으로 들을 수 있다. 구태여 말하자면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종합선물세트 같아 어느 세대에 소개해도 흥미를 느낄 법한 영화다. 이 영화를 포함해 감독이 아직 두 편 밖에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앞으로 보다 멋진 영화가 나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법한 정보를 한 두 가지 제공하겠다. 에스터의 아버지는 종신부제(permanent deacon)로 결혼한 가톨릭 성직자다. 가톨릭교회에서 사제인 경우 독신서약을 하지만 종신부제는 결혼한 상태에서 부름을 받았기에 에스터 같은 딸이 있는 것이다. 성사권은 없는 대신 설교권이 주어져있다. 한국 가톨릭에는 종신부제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낯선 직분이다. 엘리 아버지 역의 예성이 눈에 익다 했더니 '메트릭스2'에 나왔던 배우다.
코로나19 사태로 영화계는 어느 대중예술분야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 도무지 사람들이 극장에 가지 않는 까닭이다. 아무리 할인권을 전국에 뿌린다 한들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는 그 틈을 파고들어가 돈맥을 움켜쥐었다. '반쪽의 이야기'는 넷플릭스 영화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다. 그 점이 무척 아쉽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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