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최익현이 “생존을 위해 깡패조직에 붙어 기생하는 사나이”였다면, 강 과장은 정반대의 인물이다. 골드문 측에서 제시하는 뇌물에도 관심이 없고, 동료들이 모두 진급하는 동안 오로지 “범죄 조직 소탕”에만 혈안이 돼 이렇다 할 명예도 갖추지 못했다. 최민식의 말처럼 “과잉된 상태의 감성, 논리,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최민식은 <신세계>를 통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해 묻고 싶었다고 한다. 선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고 해서 악한 과정이 용서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세계>는 묻는다. 강 과장이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비난하거나 옹호할 수 있는가. 동료와의 술자리에서 소주를 마시며 “이번 일만 끝나면 사표 쓰고 싶다”는 강 과장의 씁쓸한 표정에서 연민의 감정이 느껴진 건 그래서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트럼펫을 연주하기도 했던 최민식은 “영화와 음악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장르가 되었다”며 인물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 영화 음악 다섯 곡을 추천했다.
1. <내 생애 꼭 한번 들어야 할 영화음악>
“제가 고등학교 때만 해도 영화 하면 외화, 음악 하면 팝송이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전문적인 영화 음악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는데 특히 <김세원의 음악실>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어요. 영화 대사들과 함께 영화에 대한 에피소드를 함께 들려줬는데, 한창 영화에 빠져들 시기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진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영화 <대부>의 OST도 그 중 하나에요. <대부>에서 주를 이루는 악기가 트럼펫인데, 오케스트라가 들어간 웅장한 음악보다는 개별적인 악기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 좋아하는 편이라 더 애착이 많이 갑니다. <대부>도 영화 <신세계>처럼 욕망을 갖고 치열하게 싸우다가 결국엔 소파에 파묻히는 대부의 모습이 정말 외로워 보였어요. 악기와 장면이 기가 막히게 매치가 됩니다.”
2. <올드보이 O.S.T>
“영화 <올드보이>는 제가 출연한 영화라서 자화자찬 같지만, 객관적으로 멀리서 봐도 음악들이 참 좋았어요. 아주 죽였죠. (웃음) 미도의 테마를 한 번 들어보세요. 쿵 짝짝, 쿵 짝짝, 왈츠가 정말 좋습니다. 만약 그때 제작비가 좀 넉넉해서 더 많은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오케스트라를 삽입해 OST가 웅장하게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 연주자가 6분 정도였는데도 굉장히 훌륭하게 나왔거든요.”
3. < COFFEE VOL.4 >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할리우드에서도 계속 리메이크가 된 작품이죠. 이 영화에도 트럼펫 소리가 애잔하게 흘러나오는데, 범죄를 저지른 살인범의 심리를 단선적으로 표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합리화를 하지도 않으면서 강한 페이소스를 남겨요. 이 악기가 참 매력적이에요. 굉장히 남성적이면서도 또 굉장히 고독하고 외로운 멜랑꼴리한 색깔의 악기죠. 그래서인지 영화 음악에 트럼펫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4. <황금의 트럼펫 1 (Golden Deluxe Trumpet 1)>
“영화 <길>을 보면 광대를 쫓아다니는 젤소미나라는 가여운 여자가 죽고, 안소니 퀸이 바다에 혼자 주저앉아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참 외롭고 불쌍한 인생들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들은 광대로 나오고요. 이런 와중에 트럼펫은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하고 아주 서정적인 선율로 인간의 폐부를 찌릅니다. 다시 봐도 정말 인상적인 순간이죠.”
5. < BEST 영화음악 100 >
“영화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OST에서는 트럼펫이 주가 되진 않지만, ‘엔니오 모리꼬네 옹’의 음악은 정말 대단하죠. 경쾌할 때도 있고 아주 애잔한 선율을 보여줄 때도 있는데, 그게 단순한 직설적인 표현이 아니에요. 감독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감독의 의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주는 것이 영화 음악 자체가 갖고 있는 고유의 표현력이거든요. 그래서 또 하나의 장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거죠. ‘Once Upon A Time In America’도 좋지만 서로 친구를 배신하고 죽이던 마피아들이 어린 시절 브루클린 다리를 배경으로 뛰어노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음악도 참 좋아요.”
어느덧 데뷔 24년 차. 이제는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만 집중하던 시절을 지나 영화라는 작품 전체를 책임질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최민식이 이야기하는 ‘배우가 사는 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연기를 하고 있는 수많은 배우들, 그리고 배우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좋은 가수들을 보면 진심으로 노래한단 말이에요. 정말 자기 나름대로 경험과 느낌으로 불러야 그게 나오는 거죠.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경험에 따라 대본을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져요. 배우는 스스로가 표현수단이기 때문이죠. 내가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라, 내 몸 자체가 악기에요.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 습득한 지식, 인간과 자연에 대해 느낀 희로애락들, 이게 다 재산이란 말이죠. 그래서 늘 후배들한테 그런 얘기를 해요. 좀 자유로워져라. 우리 사랑한다, 사귄다, 뭐 어때요? 어차피 나이 먹으면 현실적인 동물이 되어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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