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빅나티(왼쪽)가 스윙스(오른쪽)를 저작인접권 문제를 거론하며 디스곡을 발표했다. /사진=빅나티,스윙스 SNS
래퍼 빅나티(왼쪽)가 스윙스(오른쪽)를 저작인접권 문제를 거론하며 디스곡을 발표했다. /사진=빅나티,스윙스 SNS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악뮤의 이찬혁은 5년 전 국내 대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에서 이렇게 말했다. 힙합이 음악 그 자체가 아닌 각종 노이즈로 얼룩지는 사태를 비꼬는 듯한 표현이었다. 당시 래퍼들이 이찬혁 발언에 반발했지만, 대중들은 이찬혁 발언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한동안 조용하던 힙합계에 또다시 디스(저격)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22일 래퍼 빅나티의 인스타그램 계정 최근 게시글엔 댓글이 1400개 이상 달렸다. 빅나티가 래퍼 스윙스를 저격하는 곡을 발표한 후의 대중들이 격하게 반응한 결과다. 그의 게시글에 달린 빅나티에 대한 비난 댓글은 좋아요 수가 만 천개를 넘기기도 했다.
스윙스 동료 래퍼들이 빅나티를 저격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T사진=래퍼 세홍 SNS
스윙스 동료 래퍼들이 빅나티를 저격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T사진=래퍼 세홍 SNS
빅나티가 스윙스를 저격한 이유는 개인적 감정에 동료 가수들의 저작인접권 문제가 겹치면서 벌어진 일이다. 빅나티는 '소속 아티(스트)에게 나랑 X치면 밀어준다지. 그래 놓고 유튜브 나와서 착한 척하며 쪼개'라고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스무 살 어린 동생을 밀친 후에 대뜸 넌 맞아야겠대"라며 스윙스와 개인적 갈등이 있었음을 폭로했다.

또 본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자기 동료가 겪은 저작인접권 문제를 거론하며 비판했다. 저작인접권은 저작물을 대중이 소비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자에게 부여한 권리로 가수·배우 같은 실연자, 음반 제작자 혹은 방송사업자에게 부여되는 권리다. 빅나티는 과거 스윙스가 레이블 수장으로서 소속 가수들의 저작인접권을 임의로 매각해 이익을 챙겼다고 비판했다. 그는 "너 동의 없이 팔았잖아 형들 마스터권 막으려고 네 파산 그리고 산 포르쉐 네가 진짜 사람 새끼냐고"라며 스윙스의 도덕성을 비난했다.

스윙스는 곧장 라이브 방송으로 해명했고, 이 불씨가 기리보이, 양홍원, 노엘, 세홍 등으로 이어졌다. 스윙스와 친분이 있는 래퍼 세홍은 빅나티 디스곡을 예고하거나 래퍼 양홍원은 인스타그램 댓글을 통해 빅나티에 대한 선전포고를 암시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여기에 미노이는 또 다른 대상을 향한 디스곡을 갑자기 공개하며 힙합씬을 또 한 번 들썩이게 하고 있다. 상대는 래퍼 우원재로 과거 방송에서 친분을 보여줬던 터라 대중들은 더 흥미롭게 관전하고 있다. 미노이는 당시 방송에서 우원재에게 친근하게 대했던 태도를 180도 바꿔 '양치 좀 해 냄새나 XXX', '역시 끼리끼리. 지가 무슨 교과서 막 이래요' 등 노골적인 비난을 쏟아내면서 대중의 도파민을 자극했다.

한국 힙합계에서 래퍼들 간의 디스전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힙합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나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찬혁의 가사처럼 힙합의 위상이 떨어진 데에는 욕설, 혐오 그리고 마약 등 다양한 원인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상대를 랩으로 비판하는 '디스'(비방) 문화가 개인 간의 감정 영역에만 머물며 저속한 디스에 그쳤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음악 역사상 불합리한 사회를 꼬집기 위해 탄생한 힙합의 디스 문화가 이제는 한 개인을 조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Afrika Bambaataa(아프리카 밤바타)는 힙합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곤 했다. / 사진= Afrika Bambaataa의 Just Get Up And Dance 뮤직비디오
Afrika Bambaataa(아프리카 밤바타)는 힙합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곤 했다. / 사진= Afrika Bambaataa의 Just Get Up And Dance 뮤직비디오
힙합은 1970년대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라는 지역에서 시작됐다. 당시 재정난에 허덕였던 뉴욕 안에서도 브롱크스는 유독 가난하고 범죄, 갱단 간의 유혈 사태가 일상인 곳이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흑인과 라티노들은 총 대신 마이크를 잡고 사회 시스템의 모순, 부패한 공권력과 빈곤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특히 거대 갱단의 리더였던 아프리카 밤바타(Africa Bambaataa)는 폭력 대신 예술로 경쟁하자는 '유니버설 줄루 네이션(Universal Zulu Nation)' 설립하고 '평화, 사랑, 단결, 그리고 즐거움'을 힙합의 핵심 가치로 정했다.
힙합은 미국 1980년대 사회를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 사진=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의 'The Message' 공식 뮤직비디오
힙합은 미국 1980년대 사회를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 사진=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의 'The Message' 공식 뮤직비디오
디스 문화의 핵심인 배틀(Battle) 역시 상대의 인격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뛰어난 라임과 비트로 사회적 메시지를 세련되게 전달하는지를 겨루는 '실력의 장'이었다. 1982년 발표된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의 '더 메시지' 가사를 보면 그 당시 도시 빈민가의 처참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방엔 깨진 유리 조각뿐이고, 사람들은 계단에 볼일을 보죠. 다들 상관도 안 해요.
이 냄새도, 소음도 견딜 수 없지만, 이사할 돈이 없으니 내게 선택권은 없겠죠.'
(Broken glass everywhere
People pissin' on the stairs, you know they just don't care
I can't take the smell, can't take the noise
Got no money to move out, I guess I got no choice)
래퍼 미노이가 우원재를 저격하는 디스곡을 발표했다. /사진=미노이 공식 유튜브 채널
래퍼 미노이가 우원재를 저격하는 디스곡을 발표했다. /사진=미노이 공식 유튜브 채널
하지만 국내 래퍼들의 현 디스전에서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은 물론이고 건설적인 음악적 견해 역시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상대에 대한 개인적 불만, 감정만 쏟아지고 있다. 그 뒤엔 공격적 어투가 주는 자극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만큼 디스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도 있다. 방송가도 그랬다. '쇼미더머니'는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지목해 랩으로 대결하는 '1:1 배틀' 코너를 진행하며 누가 더 살벌하게 상대를 저격하는지를 경쟁 붙인다.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상대의 외모부터 과거 행동, 발언 등을 '먼지까지 탈탈'털어 공격하며 원색적인 언어 공격을 펼쳤다.

고등학생 래퍼들이 경쟁하는 방송 프로그램 '고등래퍼'에서도 1:1 배틀을 통해 학생들이 랩으로 서로에게 상처 주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한 참가자가 상대를 공격하고 난 후 '소름이 돋았다'라거나 '멋지다', '대박이다'등 관객의 반응을 보여줌으로써 '상대에 대한 비난이 자극적이고 날카로워야 경쟁에서 이긴다'라는 인식을 대놓고 주입하기도 한다.
쇼미더머니12에서 팀 디스전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쇼미더머니12 방송 캡처
쇼미더머니12에서 팀 디스전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쇼미더머니12 방송 캡처
상대에 대한 저질스러운 비난이 '스웨그(Swag)' 또는 '힙(Hip)'이라는 단어로 더 이상 포장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불거진 디스전에 대해 '얘들은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될 걸 맨날 온라인에서만 싸우냐'하는 비웃음이 담긴 반응도 쉽게 볼 수 있다. 진정한 디스는 상대방을 깎아내려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경종을 울릴 때 가능해진다. '문화적 전통'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무분별한 조롱을 이어간다면 대중들의 머릿속에 '힙합은 힙찔이’(힙합과 ‘찌질이’의 합성어)들의 음악'이라고 각인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한국 래퍼들이 깨달아야 한다.

김수아 텐아시아 기자 suapop@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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