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빅히트뮤직, YG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빅히트뮤직, YG엔터테인먼트
《이민경의 송라이터》
현직 싱어송라이터인 이민경 기자가 음악인의 시각에서 음악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곡의 숨겨진 의미부터 들리지 않는 비하인드까지 분석합니다.

BTS·블핑, K팝이 가야할 길에 물음을 던지다 [TEN스타필드]
K팝에 적힌 'K'라는 글자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컴백을 앞둔 그룹 방탄소년단의 앨범 수록곡 제목이 공개되고 블랙핑크의 'GO'가 발매되면서 인터넷에선 "K팝의 K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어가 제목이나 가사에 없고 곡의 구성과 분위기 등에서도 한국적인 느낌을 찾아보기 어렵단 의미다. 하지만 막상 'K'가 K팝의 정확히 어떤 면을 일컫는 말인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는 20일 발매되는 방탄소년단의 컴백 앨범 '아리랑'의 트랙 리스트가 공개되고 일각에선 "앨범 이름이 왜 '아리랑'인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수록된 곡의 제목 중 한국어가 없기 때문이다. '아리랑'이라는 이름 탓에 한국적인 이미지가 앨범의 중심이 되길 기대한 이들의 의견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블랙핑크가 공개한 음원 'GO'(고)도 'K팝' 같지 않다는 이유로 몇몇 비판을 받았다. 곡의 구조가 국내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구조로 구성된 데다, 곡의 가사에도 한국어가 없어 지적의 대상이 됐다.

한국어는 K팝을 'K'팝답게 만들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요소다. 외국인 멤버가 속해있더라도, 언어로써 이 아이돌 그룹이 한국 산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단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중요성은 라틴 가수 배드 버니(Bad Bunny)의 사례로 살펴볼 수 있다. 그가 처음 인기를 끈 건 라틴 음악을 팝의 문법에 맞추면서부터지만, 스페인어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 덕분에 음악사적 의미를 중시하는 그래미 어워즈에서 본상인 '올해의 앨범'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진=그룹 블랙핑크 'GO' MV
사진=그룹 블랙핑크 'GO' MV
그렇다면 한국어를 제외한 음악 자체는 어떨까. 음악적으로만 본다면 K팝의 'K'는 그 실체가 조금 모호하다. 우리가 흔히 'K팝 특유의 맛', '뽕끼'라고 부르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리듬은 대부분 서구권 팝(Pop, 대중음악)의 형식을 가져와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초창기 K팝에서 유행했던 장르인 뉴잭스윙부터 EDM, 힙합 등 모든 장르는 서구권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당시 유행하던 장르와 같다. 오늘날 K팝에서 유행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 역시 지금 세계 시장에서 사랑받는 소리의 모음이다. 방탄소년단 슈가(Agust D, 어거스트 디)가 대중음악에 국악을 섞어 발표한 '대취타'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K팝은 이미 시작부터 '팝'과 맞닿아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K팝의 핵심으로 불리는 시스템조차도 그 뿌리는 해외에 있다. '연습생 시절을 거쳐 끈끈한 서사가 쌓인 멤버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칼군무를 맞추는 모습'이라는 모델은 사실 일본과 미국의 방식을 수십 년에 걸쳐 고도화한 형태다.

멋진 외모의 청년들이 모여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1990년대 미국의 대형 그룹이었던 엔싱크(NSYNC)와 같은 팀에서 비롯됐다. 나아가 K팝 특유의 체계적인 연습생 교육 시스템은 SM엔터테인먼트 설립자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과거 일본의 연예 기획사 '쟈니스'를 보고 만든 방식이다. 쟈니스는 데뷔 전 연습생을 '주니어'라고 부르고 교육해 선배 가수의 백댄서로 세웠다. 주니어만의 단독 콘서트를 열고 데뷔도 전부터 팬덤을 모았다. 보다 앞선 1960대 故 마이클 잭슨이 속했던 그룹 잭슨 파이브도 데뷔 전부터 무대 매너와 인터뷰 요령을 철저히 교육받았다.
블랙핑크/ 사진=YG
블랙핑크/ 사진=YG
한국어도 없고 시스템도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니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을 'K팝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보기엔 이들이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크다.

K팝을 사랑하는 세계 각지의 팬들이 한국에 직접 방문하고 K-푸드를 소비하는 등 경제활동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1850만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았다. 이는 K팝이 급부상하던 2019년 기록한 1750만명을 넘어서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또 문체부의 '2025년 콘텐츠산업조사' 자료에 나타난 2024년 국내 음악 산업 매출액은 13조 2700억원이다. 방탄소년단 정국이 SNS에 올린 '불닭 마요 들기름 막국수' 레시피 하나로 삼양식품의 불닭 소스 해외 매출이 급증한 적도 있다.

20대 후반·30대 국내 대중 입장에서 최근 음악에 2010년대 K팝의 정겨운 느낌이 사라진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 팝 시장에서 유행하던 음악과 지금 팝 시장의 유행이 많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K팝이 배드 버니처럼 그래미 본상을 받는 아티스트가 나올 정도로 성장하기 위해선 K팝을 글로벌 대중성과 우리 정체성 사이 어디에 위치시킬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어 소외 현상이 K팝이란 정체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K'는 과연 무엇일지에 대한 업계 내외 논의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민경 텐아시아 기자 2min_ro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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