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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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 러시아 예술의 종합 세트가 펼쳐졌다. 작품은 주연 배우의 캐스팅 논란 속에서 막을 올렸지만, 막상 뚜껑을 연 '안나 카레니나'는 작은 러시아를 옮겨 놓은 듯한 무대로 관객들을 빠르게 끌어들였다.

지난달 20일 개막한 '안나 카레니나'(연출 알리나 체비크)는 레프 톨스토이가 1877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 원작이다.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사랑과 불륜, 사회적 제약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도덕적 갈등을 다룬다.

안나는 러시아 상류사회에서도 존경받는 고위 관료 카레닌의 아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편과 아들이 있는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서도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겉보기에는 부족함 없는 삶처럼 보이지만, 부부 사이의 애정은 이미 식어 있다. 안나는 의무와 체면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고,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난 장교 브론스키는 그의 내면을 알아본다. 이후 안나의 삶은 크게 흔들린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유부녀의 사랑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안나는 점점 사교계에서 외면받게 되고, 남편 카레닌과의 관계 역시 파국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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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대 연출이다. 극 초반부터 대거 등장한 앙상블 배우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착용한 채 왈츠에 맞춰 우아한 동작을 선보이며 시선을 끌었다. 이때의 몸짓은 마치 피겨스케이팅을 연상케 하며 러시아의 광활한 겨울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장르 간 결합을 위해 등장한 실제 성악가 역시 1막과 2막을 통틀어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여기에 오페라와 발레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19세기 러시아의 분위기를 무대 위에 구현하려는 시도도 돋보였다.

무대 구성 역시 인상적이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위에는 가로로 긴 다리 하나와 네 개의 이동식 세트만 놓인다. 네 개의 세트에는 각각 스크린과 원형 회전문이 설치돼 19세기 연회장은 물론 극의 핵심 공간인 기차역까지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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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방대한 원작을 무대에 담아내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다. 작품의 원작 소설은 국내 번역본 기준 3권, 약 1800쪽에 달하는 대작이다. 이를 2시간 남짓한 공연으로 압축하다 보니 인물들의 심리를 충분히 설명하기 전에 장면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로 인해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모든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안나가 왜 위험한 사랑에 모든 것을 걸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적인 서사가 무대 위에서 충분히 풀리지 않으면서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2016년 재연 이후 7년 만에 화려하게 돌아온 '안나 카레니나'. 볼거리는 풍성했지만 여전히 숙제를 남긴 작품이다.

한편 '안나 카레니나'는 오는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정다연 텐아시아 기자 ligh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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