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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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600년 만에 후손들 덕에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됐다. "장영실이 로마로 떠났다"는 설정은 다소 뜬금없지만, 왠지 모를 여운을 남긴다. '한복 입은 남자' 창작진은 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지평을 넓혔던 인물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꾸몄다.

지난 2일부터 충무아트센터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는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이하 '한복남')는 이상훈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조선사 최대의 미스터리로 꼽히는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마지막 행적을 모티브로 역사와 상상력을 결합해 새로운 서사를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장영실은 출생 기록만 1385년~1390년으로 알려졌을 뿐, 사망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1442년 이후라고만 전해진다. 그렇게 역사 속에서 돌연 사라진 장영실이 '한복남'으로 무대 위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창작진은 장영실이 조선을 벗어나 유럽으로 떠났다는 설정으로 장영실의 인생 2막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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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의문의 책 한 권으로 시작된다. 방송국 PD인 진석은 이탈리아 사람인 엘레나로부터 '비망록'(중요한 골자를 적어둔 책자)을 받는다. 진석은 그 안에서 '비차'(飛車·조선 시대의 비행 장치)의 도면을 발견하게 된다. 진석은 이 도면이 르네상스 대표 화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설계도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비차의 스케치도 17세기 유럽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과 거의 일치한다고 했다. 진석은 이를 단서로 친구 강배와 함께 비망록의 주인과 진실을 추격한다.

1막은 관객들을 600년 전 조선으로 데려간다.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설정은 정교한 배경과 영상으로 현실감 있게 꾸며졌다. 수많은 앙상블은 궁의 위엄을 체감하게 했고, 장영실의 발명품들은 디테일 가득한 소품들로 현실감 있게 꾸며져 그의 능력이 남달랐음을 확인시켰다. 이 같은 구현은 관객들을 단번에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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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출신이었던 장영실은 청소년기 때부터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며 비범함을 드러냈다. 궁 안에서 열린 대회에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궐 입성에 성공한다. "임금이 무능하니 백성이 직접 기술을 개발해 살 궁리를 하는구나"라는 임금의 대사는 오직 나라를 생각해 한글을 창제했던 당시 세종대왕의 진심까지 엿볼 수 있다.

장영실은 '백성 바라기' 세종의 절친한 친구나 다름없었다. 장영실은 궁에 들어온 후 천문 기구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자격루, 옥루 등을 만들어 세종에게 총애받았다. 그러던 중 세종대왕의 어가(임금이 타던 수레)가 갑자기 부서지는 사건에 연루됐다. 세종대왕과 가장 가까운 동업자나 마찬가지였던 그는 모진 고문을 받게 되고, 이후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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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를 감춘 장영실은 2막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다시 등장한다. 장영실이 5년의 항해 후 이탈리아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설정이다. 1막과 달리 배우들 모두 웃음기 싹 뺀 얼굴로 장영실의 마지막을 관객들에게 정성스럽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보여줬다. 아무도 모르게 삶을 등진 장영실은 화려한 유럽에서 자신과 같은 호기심을 가진 다빈치를 만나고, 그와 함께하면서 비로소 외롭지 않게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된다.

'한복남'의 제작을 맡은 엄홍현 총괄 프로듀서는 "장영실이라는 이름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 우리는 참 무심했다"며 "그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과학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의 삶과 꿈을 무대로 불러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무대 위 정면 영상에는 별이 유독 많이 나타난다. 권은아 작가는 별들에 대해 "'대단한 꿈을 좇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영실과 세종이 만들어낸 별을 보며 관객들이 '나의 별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 질문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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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텐아시아 기자 ligh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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