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2 제공
사진=KBS2 제공
KBS 주말 드라마가 연이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산업재해 발생 위험 장면을 그대로 방송에 송출한 것. 지난 2월 환경법 위반에 해당되는 막걸리 무단 방류 장면을 내보낸 데 이어 또다시 부적절한 장면을 송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 24일 방영된 KBS2 주말드라마 '화려한 날들'에 나왔다. 이날 방송에서 극 중 이지혁(정일우 분)은 결혼식 당일 재벌집 딸에게 파혼당한 뒤 집에서 가출,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이 건설 현장의 인부들은 말 한마디 없이 일만 하는 이지혁을 눈여겨봤다. 점심시간이 됐고, 이지혁은 현장 안에 마련된 식사 자리에서 작업자 사이에 앉아 말없이 밥을 먹었다. 이때 작업장 인부 한 명이 이지혁에게 "막걸리 한 잔 받아"라며 그릇을 건넸다. 이지혁은 "됐습니다"라며 술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다른 인부는 "어이 이씨, 젊은 사람이 그렇게 거리 두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라며 술을 마시라고 제안했다. 이지혁 옆에 있는 인부 역시 이지혁의 허벅지를 찌르며 한 잔 받으라는 식으로 그릇을 가리켰다.

거듭된 권유에 이지혁은 결국 인부가 주는 막걸리를 받았고, 그릇 가득 채워지는 술이 화면에 그대로 나왔다. 이지혁이 막걸리를 한 번에 들이자 그의 허벅지를 찔렀던 인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KBS2 '화려한 날들' 방송 화면
사진=KBS2 '화려한 날들' 방송 화면
건설 현장에서의 음주 작업은 불법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업 현장에는 주류 반입이 불가하며 현장 내에서의 음주 역시 금지된다. 그러나 드라마 속 작업 현장에는 막걸리 세 병이 보란 듯 놓여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업무 중 음주 상태에서 작업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묵인하거나 방치한다면 사업주에게 책임이 주어지고 사업장 징계 사유가 된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건설업체나 하청업체는 취업규칙·근로계약서·안전관리 규정 등에서 '음주 금지'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건설·제조·물류·보건업 등은 산재 고위험 업종으로 분류돼 타 업종보다 엄격한 평가를 받는다. 실제 대형 건설 현장에는 내부에 음주 측정기가 있을 정도다.

막걸리를 들이켠 이지혁은 안전모를 챙겨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러나 이내 비틀대며 쓰러졌고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동행한 인부는 이지혁의 실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절친한 친구 박성재(윤현민 분)에게 "잠든 겁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4~5일을 잠을 안 잤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막걸리 한 잔에 확 퍼진 거죠"라고 설명했다. 피로가 쌓였던 이지혁이 결국 인부가 권유한 술로 인해 쓰러지게 됐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이지혁은 쓰러질 때 안전모를 손에 들고 있었고 착용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만약 이지혁이 쓰러지는 과정에서 잠이 아닌 머리 등 신체 일부를 다쳤다면 이는 산재에 해당한다. 산재는 부상의 심각성이 아닌 '발생 원인이 업무와 관련되었느냐'가 인정의 핵심 기준이 된다. 이지혁은 업무 중 점심시간에 음주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로 인해 다치게 되면 산재보상보험법 제37조에 따라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어도 산재다.

실제로 법원이나 근로복지공단은 "한잔 정도는 괜찮다"는 이유로 음주할 것을 요구받거나 "분위기상 따라야 했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낀 경우, 이로 인해 근로자가 사고를 당하면 이를 산재로 인정하기도 했다.
사진=KBS2 '화려한 날들' 방송 화면
사진=KBS2 '화려한 날들' 방송 화면
건설사 직원 A씨는 "이지혁이 비교적 낮은 곳에서 쓰러져 다행이지 실제로 음주 후 작업으로 다쳐 부상을 입게 된다면 책임자들은 현장에 없었더라도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이지혁이 크게 다쳐 사망에 이르렀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까지도 갈 수 있다.

KBS는 지난 2월 전작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 방영 당시에도 환경법 위반에 해당하는 막걸리 무단 방류 장면을 내보내 시청자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공영 방송사가 거듭해서 부적절한 장면을 내보내면서 시청자들의 불쾌감을 자아내고 있다. 일부 애청자들은 이날 노동 중 음주 장면을 두고 "생사를 오갈 수 있는 건설 현장에서 술을 권한다는 건 살인급 행위"라며 "강요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신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다른 시청자들도 "공영 방송사에서 근무 중 술 먹는 장면을 내보낸다고? 보기 불편하네요", "실제로 작업 중 술을 마시는 인부들이 있으니까 저렇게 연출된 거겠지?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저런 과정을 거쳐 지어졌을지 순간 생각하게 됐다" 등의 말을 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다연 텐아시아 기자 ligh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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