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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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자신이 가장 만들고 싶었다는 작품 '어쩔수가없다'를 내놓는다. 스릴러와 블랙 코미디적 요소를 지닌 이번 영화는 재취업 경쟁을 이어갈수록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 치밀한 심리 묘사와 아이러한 유머가 돋보인다. '어쩔수가없다'에서 부부로 나와 처음 연기 호흡을 맞춘 이병헌과 손예진은 이번 영화가 우습고도 강렬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19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박찬욱 감독,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이 참석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뤘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액스(THE AX)'가 원작 소설이다. 박 감독은 "소설 원작을 읽고 영화로 옮기고 싶다고 생각한 지가 20년이 다 돼 간다. 결국 성사됐다. 빨리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벅찬 마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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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사춘기 시절부터 미스터리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이렇게까지 만들고 싶은 영화가 없었다. 대게 미스터리 장르는 '누가 범인이냐'는 종류의 이야기가 많다. 그러고 나면 수수께끼가 다 풀린다. 다시 음미해보기엔 재밌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작품은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를 따라간다. 수수께끼는 없다. 그의 심리를 따라간다. 멀쩡했던 그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사회 시스템에서 이 사람이 내몰리는 과정을 그린다"며 "몇 번을 곱씹어 봐도 재밌었고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여러 가지로 심리적인 장치가 잘 돼 있었다"라고 전했다.

박 감독은 "아주 씁쓸한 비극인데 거기에 새로운 종류의 부조리한 유머를 넣을 만한 가능성이 보였다. 소설 자체도 그런 면을 갖고 있지만 이것을 내가 만든다면 더 슬프게 웃긴 유머를 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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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25년간 헌신한 제지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돼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한 구직자 유만수 역을 맡았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 재밌어서 감독님이 만드시는 게 맞나 그랬다"며 "웃음 포인트도 그랬다. 그저 웃긴 게 아니라 슬프면서 웃겼다.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들면서 우스운 상황들이 생긴다.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병헌은 "평범한 인물들이 나와서 극단적인 상황을 맞는다. 심리적 변화, 그에 따른 행동 변화 같은 것들이 과연 관객들에게 얼마나 이입하는 데 방해되지 않고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게 다가갈지 고민하며 작업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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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은 "박찬욱 감독님과 작품을 해보고 싶었고 그때 이미 이병헌 선배님이 캐스팅돼 있었다. 이 작품을 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고 생각했다. 강렬한 서사의 이야기였다. '이걸 내가 하는 게 맞는 건가' 생각도 들었다.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에 저는 신인의 마음이었다. 감독님과의 작업이 궁금했고 이병헌 선배님이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했다"며 "저는 미미하게 개미 수준으로 나온다. 그것만으로도 저한테 큰 도움이 됐고 재밌었다. 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관객들이 봐준다면 큰 만족"이라고 했다. 박 감독은 "다 거짓말이다. 영화 후반부를 완전히 지배한다. 단호하고 성숙한 인물"이라고 해 웃음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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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은 캐릭터에 대해 "만수의 아내고 아이들의 엄마이다. 제가 아이를 낳고 처음 하는 작품인데 출산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 엄마 역할도 해보고 이혼녀 역할도 해보긴 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의 연기는 이전과 달랐다. 실제로 경험한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구나 싶었다. 아이와 있는 제 모습이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의 모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가족을 책임지고 싶어 하고 따뜻한 엄마 역할을 해주고 싶어 하는 긍정적 엄마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몰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병헌이 이에 대해 "제가 촬영장에서 본 모습은 다른 모습이었다"라고 폭로해 사람들이 폭소하게 했다. 이어 "극 중 딸로 시원이, 리원이라는 아이들이 나온다. 리원이라는 꼬마가 계속 저에게 질문하는데, 예진 씨는 한 번도 대답을 안 하더라. 그게 몇 번 반복돼서 '예진 씨, 애가 질문하면 대답 좀 해줘'라고 했는데, '그건 선배님이 맡아서 하세요'라더라. 그런 모습을 보다가 이 얘길 들으니까 '마음은 그랬구나, 아이를 아끼고 있었구나' 싶었다"라고 농담했다. 손예진은 "딸로 나오는 아이가 호기심도 많고 계속 뭘 물어본다. 저는 대사가 있었고 감정적인 장면이라서, 감독님의 디렉팅이 있었다. 이걸 해야 했다"라고 해명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병헌과 손예진의 연기 호흡은 이번이 처음. 이병헌은 "우리가 어떻게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됐지 싶더라.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디테일했다"고 칭찬하고는 "그래서 리원이한테 대답을 안 했구나 싶었다"라고 덧붙여 다시 폭소를 자아냈다.

손예진은 극 중 취미가 댄스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춤 연습을 많이 했다고. 그는 "석 달 가까이 연습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되게 열심히 했다고 해서 봤는데 그 정도 아니다'라고 해서 충격적이었다. (영화에는) 다 잘렸다"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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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순은 잘나가는 제지 회사 반장 최선출 역을 맡았다. 박희순은 "감독님의 오랜 팬이고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한다. 대본이 들어왔다는 얘길 들었을 때 이미 하기로 마음먹었다. 극적 갈등이 고조될수록 웃음의 강도가 커지고, 그러면서도 페이소스가 있었다. 특이했다. '이런 작품을 박찬욱 감독님이 쓰셨다고?' 의아함도 들었다. 감독님 작품 중에 가장 웃음 포인트가 많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이번엔 칸을 포기하고 천만을 노리시나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희순은 선출 캐릭터를 두고 "남들은 다 힘든데 혼자만 잘나가니 그런 점은 부럽다. 그 외에 딱히 부러운 점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선출은 내적 충돌이 많은 친구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친구인데 조용한 산속 집에 살길 원한다. 그런 충돌이 이뤄진다. 아내의 만류에도 그 결심을 실행한다"고 전했다. 또한 "아내에게 순종하는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무모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다"며 아내 박예진을 언급해 웃음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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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은 제지업계로의 재취업이 절실한 업계 베테랑 구범모 역을 맡았다. 이성민은 "범모가 끌리지 않은 게 아니라 박찬욱 감독님에게 끌렸다. 시나리오 받고 '빼박'이다 싶었다. 무슨 역할인지 모르고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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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란은 실직한 후 무기력하게 변해버린 남편 범모의 모습이 못마땅한 아내 이아라 역을 맡았다. 그는 "시나리오 보고 왜 이 역할을 나한테 줬나 싶었다. 걸리는 지문이 있었다. '아름다운 미모' 이런 게 있었다. 제 역할이 맞나 싶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범모는 원고지 같은 남자다. 한참 많이 찾다가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그래도 원고지를 좀 다르게 쓸 수도 있지 않나"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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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은 제지 공장 기술자에서 구조조정 후 일자리를 잃고 구두 가게 매니저가 된 고시조 역을 맡았다. 그는 "제가 찍었지만 남의 영화 같은 느낌이다. 더 기대되고 바라보게 되는 작품"이라며 '어쩔수가없다'를 향한 팬심을 드러냈다.

박 감독은 원래 영화 제목을 원작 '액스(ax)'에서 딴 '도끼' 혹은, '모가지'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화 대사에도 나오듯 미국에선 해고를 '도끼질한다', 한국에선 '모가지다'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박 감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 구조조정이 일어날 때 당하는 입장, 그걸 행하는 사람들 모두 '어쩔 수가 없다'는 각자의 입장이 있다. 충돌에서 빚어지는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어쩔수가없다'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한국 영화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어쩔수가없다'가 열한 번째다. 또한 한국 영화가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은 2012년 '피에타' 이후 13년 만이다. 박찬욱 감독은 '쓰리, 몬스터'(2004), '친절한 금자씨'(2005) 이후 세 번째로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찾는 것이다. 박 감독은 "한국 영화가 오랜만에 경쟁 부문에 간다는 게 의미 있다"고 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음달 17~26일 열리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도 선정됐다. 박 감독은 "부산영화제가 30주년이다. 개막작으로 초대받아서 영광스럽다. 한국영화와 함께한 역사라서 더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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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순은 이번 영화에 대해 "너무 재밌는데 페이소스의 진한 잔향이 남는 작품"이라며 관람을 부탁했다. 이병헌은 "깐느박과 작업하니 안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얼마 전에 영화를 보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이 그런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감독은 이번엔 '깐느박'이 아닌 '천만박'을 노리냐는 질문에 "저는 언제나 그 목표로 영화를 만들어와서 이번이라고 특별히 다를 건 없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실직을 다룬다고 하면 어두운 영화를 예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어떤 슬픈 이야기라도 들여다볼수록 우스운 구석이 있다. 웃겨서 슬프다 혹은 슬퍼서 웃기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을 안타까운 상황에 던져놓고 비웃는 종류의 웃음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분 안에 있는 모습들이다. 그래서 웃을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어쩔수가없다'는 다음달 개봉 예정이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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