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대를 예고하는 비디오 클립과 간단한 토크를 삽입한 컬투의 사전 녹화분량은 분명 생방송의 진행 사고를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마련된 장치였다. 큐시트도 없이 방송을 이끌어가는 김희철과 일 년 사이 부쩍 성장한 정용화를 비롯한 MC들은 부담이 줄어든 만큼 노련하고 안정적인 진행 솜씨를 선보였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하고 신중하게 준비되었어야 할 가수들의 무대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끝도 없이 말썽을 일으킨 음향사고는 사전 리허설의 충실함을 의심케 했고, 끈질기게 산만한 카메라는 과연 같은 방송국의 와 인프라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전체적으로 ‘공장’이라는 안일한 콘셉트와 출연진의 특색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획, 상상력이 결핍된 무대부터가 기대 이하의 수준이었지만 그런 형이상학적인 것들을 지적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은 기본이 망가진 쇼였다. 순서에 쫓기듯 노래를 부르고 사라지는 가수들은 그저 출연진의 볼륨을 과시하기 위해 동원된 것처럼 보였으며, 그 와중에 장르 편중을 방지하기 위해 섭외된 가수들 역시 시대착오적으로 진부했다. 마치 노래방에서 ‘본전’을 생각하며 간주도 뛰어넘고, 2절은 생략하며 최대한 많은 노래를 불러보겠다는 다짐처럼 이 방송에는 가수에 대한, 그리고 무대에 대한 어떤 존중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합동’ 공연의 의미를 제대로 소화한 GD&TOP과 세븐의 무대는 마이크 사고로 얼룩졌고, 타이거 JK의 노래는 무례하게도 광고에 허리를 잘렸다. 방송사마다 진행되는 연말 결산 프로그램을 위해 가수들은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스케줄을 소화한다. 시청자들은 비슷비슷한 무대를 보고 또 본다. 그렇다면 적어도 방송사에서는 공연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모욕을 느끼지 않게 할 최소한의 의무는 있다. 전율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진심과 정성을 느끼게는 해 줘야 할 것 아니냔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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