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을 끝으로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극본 최수진 최창환, 연출 조영광 정동윤)은 피고인이었지만 검사로 복귀한 박정우(지성)가 역으로 피고인의 신분이 된 차명그룹 회장 차민호(엄기준)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권선징악의 뻔한 엔딩이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뻔하지 않았다. 일곱 개의 인격이 담겨 있는 다중인격체를 무리 없이 표현해내며 2015년 MBC 연기대상을 거머쥐었던 지성은 ‘피고인’에서 사형수라는 나락으로 떨어진 검사 박정우의 내면을 절절하게 표현해 매회 화제를 낳았다. 크림빵을 먹는 연기까지 가족을 잃었을 때 터져나오는 오열과 절규만큼 슬프게 표현한 지성은 그의 복합적인 연기가 진화했음을 보여줬다. 한결같이 가족애를 강조하는 설정에도 내면까지 완벽하게 젖어든 그의 연기는 다소 연극적이었다는 기존의 평을 씻어내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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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도’로 분한 지성의 반대선상에 서있는 것은 한국 사회 특유의 정경유착, 부패는 물론 개인의 열등감까지 한데 뭉쳐져 인격화된 듯한 차민호(엄기준)였다. 엄기준이 분한 차민호란 인물은 종 자체가 다른 인격장애는 아니다. 마지막 회에서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품고 있던 나연희(엄현경)가 증언했던 대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차민호는 사랑도 할 줄 알았고, 죽은 아버지의 망령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복합적인 악인을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순백의 ‘모태 사이코패스’보다 쉽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차민호는 이를 무리없이 해냈다. 차선호와 차민호를 동시에 연기하는 1인 2역도 깔끔했다.
스토리가 반환점을 돌 때마다 키맨으로 활약한 조연들의 연기도 지성과 엄기준을 튼튼하게 뒷받침했다. “형이 왜 죽어요? 내가 했는데”라는 대사를 유행처럼 번지게 만들었던 이성규(김민석)가 가장 대표적이다.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박정우의 딸 하연이(신린아)를 여동생처럼 소중하게 데리고 다니던 김민석의 살뜰한 연기는 ‘피고인’을 보는 숨은 재미 중 하나였다.
박정우와 15년 지기 친구지만 그에게 남몰래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검사 강준혁을 연기한 오창석 또한 사건을 은폐했다는 죄책감에 무너지는 인간을 흔들림없이 표현해냈다. 극에 반짝이는 재미를 줬던 감방 동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신철식(조재현), 어르신(우현), 우럭(조재룡), 뭉치(오대환) 등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기능적 부분을 뛰어넘을 정도로 진정성 있는 연기로 ‘피고인’ 속 그들만의 명장면을 여러 차례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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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과 ‘소시’라는 꼬리표에 감춰진 연기력 우려를 말끔하게 털어낸 엄현경과 권유리도 인상적이었다. 엄현경과 권유리는 각자 한층 성숙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펼쳐내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기대감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