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닐 블롬캠프가 내놓은 데뷔작 ‘디스트릭트9’은 아이디어와 기괴함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SF변종이었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을 핍박받는 이방인으로 묘사한 감독의 창의력과 패기는 할리우드발 상업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드문 재능이었다. 하지만 ‘언브레이커블’(2000) ‘싸인’(2002) 이후 썩은 토마토지수 경신을 이어가고 있는 샤말란처럼 닐 블롬캠프 역시 ‘엘리시움’(2013)과 ‘채피’를 거치며 자신이 일찍이 이룬 명성을 갉아먹는 분위기다.
지금 극장에서 상영되는 ‘채피’는 북미 개봉(3월 6일) 당시 1위를 차지했지만, 감독도 알고 배우도 알고 스튜디오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X됐다!’ 성적만 1위일 뿐 오프닝 성적은 처참한 수준이고, 평단과 관객 반응도 냉담하다.

‘채피’에서 닐 블롬캠프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인장을 강하게 박는다. 샤말란에게는 그것이 ‘반전’이라면, 블롬캠프에게는 요하네스버그와 로봇과 인간의 변이(變異)일 것이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통해 남아공의 인종차별 문제와 빈부의 격차를 파고들었던 전작들처럼 ‘채피’에도 그런 비판 의식이 가득하다. 이는 2005년 단편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에서부터 다뤄 온 것으로 감독은 남아공 슬럼가가 품고 있는 불온함을 감정을 지닌 로봇을 통해 까발리는 일관성을 보인다. 이것이 자기 복제라고? 글쎄, 나는 여러 장르를 오가는 것보다 한 장르를 꾸준하게 잘 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드는 감독이 어디 흔한가.

놀랍게도 닐 블롬캠프의 차기작은 할리우드 SF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는 ‘에일리언’ 시리즈다. 어린 시절 ‘에일리언’ ‘프레데터’ ‘로보캅’ 같은 영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운 블롬캠프에게 이 프로젝트는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채피’는 그런 그의 행보를 우려하게 만든다. 과연 그는 ‘에일리언5’에서 꺼져가는 장기를 되살려 낼까. 그의 독특한 창의력이 ‘에일리언’에서는 빛을 발하길, 불안해하면서 기대해본다.
텐아시아=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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