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을 만났다.
'세계의 주인'은 열여덟 여고생 이주인(서수빈 분)이 전교생이 참여한 '아동 성범죄자 출소 반대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우리집'(2019) 이후 6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윤 감독은 "긴장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며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지만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기대되고 무섭다. 지금도 여전히 긴장한 상태다.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어떻게 동시에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만들었다.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10대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 그리고 트라우마에 다룬다. 10대 여성의 성과 사랑에 대한 테마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고 한다.
윤 감독은 "개연성이나 퀄리티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라 어떻게 하면 사실적인 경험, 진짜의 순간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과 관련해 경험할 수 있는 폭력적 상황을 떠올리게 됐고, 제가 글을 쓸 때 그것이 들어오더라"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기에 그걸 밀어내는 기간이 길었다. 하지만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반드시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성과 사랑, 거기서 기인한 폭력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또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다시 읽은 이금이 작가의 소설 '유진과 유진'이 환기가 됐다. 강력한 등불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가장 큰 힘이 돼준 작품이다. 그 다음부터는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 끌고 나가면 좋겠다는 가이드가 생긴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우리들', '우리집' 등을 통해 아이들의 시각에서 학교 폭력, 아동 방치와 같은 사회 문제를 담아냈다. 따뜻한 시선은 살아있지만 한편으로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이번 영화는 전작들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그리며 여러 시선을 담아낸다. 주인공의 나이대도 10대로 좀 더 높아졌다.
기존의 방식과 달랐던 작업 방식을 택했던 것에 대해 윤 감독은 "기존 내 방식에 스스로 매너리즘이 있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은데, 내가 영화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도 들더라. 계산할 머리는 없어서 막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인칭 시점 영화를 대부분 해왔는데, 이 주제를 들여다볼수록 1인칭 시점이 맞나 싶더라. 이 테마를 공부하면서 '이게 개인적 비극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 등에서는 한 개인에게 일어난 대참사 같은 느낌으로 다룬다. 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유구한 폭력의 역사'가 있는 반면, 드러나는 건 극히 드물다. 사회가 이러한 생존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데 고통은 온전히 개인이 짊어지는 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세계' 안에서 개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같이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영화는 성적 트라우마와 관련된 피해 사실을 직접 묘사하진 않는다. 이에 대해 윤 감독은 "잠깐이라도 (피해자들이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 인물에게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을 거다.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 고통의 무게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더라. 또한 장면화를 하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재생산'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감히?' 자신 없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세계의 주인'은 오는 22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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