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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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부터 연기 인생을 쌓아올린 배우 김유정에게도 흔들림의 시간은 있었다. 그 흔들림은 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 인생을 더 단단하게 쌓아올리기 위해 고민하고 번민하는 시간이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 주인공이 된 김유정은 22년간의 배우 생활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각오를 다졌다. 연기자로서 전환점을 지나 보니 김유정은 "내가 아름답게 바라보는 만큼 세상이 아름답게 돌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역 출신인 그는 자신의 아역이 생겼을 때가 신기했다고도 했다.

18일 부산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액터스 하우스: 김유정'이 진행됐다. '액터스 하우스'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그들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자리다.

김유정은 2003년 데뷔해 지금까지 연기자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아역 시절부터 유명했던 탓에 대중들에게 여전히 귀여운 꼬마 소녀 이미지도 있지만 어느덧 26살 숙녀가 되어 서른에 가까운 나이가 됐다. 이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배우인 것이다.

어린 시절 김유정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했다. 그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역할 대부분이 그랬다는 게 가혹한 현실을 비추는 것도 같다"고 돌아봤다. 또한 "어렸을 때는 왜 저렇게 답답한가 그랬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건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할 수밖에 없겠구나, 누구의 삶이든 간에 우리는 삶을 헤쳐 나가는 거지 않나"라고 깨달은 바를 이야기했다.

반복된 '기구한 삶'은 김유정의 연기 인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나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성인이 가까워지는 시기에 느꼈다"며 "성인이 된 후에는 밝은 역할들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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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이 연기자로서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며 전환점을 맞았던 시기도 이때였다. 그는 "10년 좀 더 전이다. 제 나이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때였다. 연기자를 떠나서 그 시기는 누구나 자아를 형성하고 확립하는 시기다. 그걸 제 연기 생활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라는 건, 배우라는 건 내가 이전까지는 주어져 있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행했다면, 이제 나아가는 시점에서는 이 일이 내가 선택한 거고 내가 연기를 사랑할 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말해줘야겠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한순간 한순간 제 선택에 따라 되는 거다. 선택에 따른 책임과 후회는 제 스스로에게 있다. '주어졌지만 내가 선택했다'고 동시에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에 김유정은 '친애하는 X'라는 새로운 선택을 했다. 오는 11월 6일 공개 예정인 티빙 드라마 '친애하는 X'(감독 이응복) 는 지옥에서 벗어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가면을 쓴 여자 백아진, 그리고 그녀에게 잔혹하게 짓밟힌 X들의 이야기. 김유정은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스타 여배우 백아진 역을 맡았다. 극 중 백아진은 '두 얼굴'을 가졌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린다.

김유정에게 '친애하는 X'는 아역 시절과 성인이 된 후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선택이었다. 서스펜스 장르에 캐릭터도 독특하기 때문이다. 김유정은 "이전에 제가 대중에게 보여준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다. 아진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욕망을 가지면서도 가장 최대치의 절제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부딪힌다. 스릴러적인 인간관계도 보여준다. 스스로 한 인간으로서 폭풍을 헤쳐가는 인물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인물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친애하는 X'는 저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지만 이걸 지금 경험하지 못한다면 내 인생의 큰 경험을 놓치게 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출연 결정했다. 처음에는 무섭고 두렵고 부담스러웠다. 인물 자체도 제가 연구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응복 감독, 동료 배우들 덕분에 즐겁게 촬영했다고. 그는 "장르물은 원래 즐거울 수가 없는데 즐거웠다. 끝났을 때 아쉬웠다"고 촬영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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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만 살아온 김유정.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냐는 물음에 김유정은 "전에는 가끔 했다"고. 그는 "저는 꿈이 많은 사람이어서 배우로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는 것을 제외하고도 정말 많고 큰 꿈이 있다"면서 "제가 하고 싶은 직업이 있으면 그 꿈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맴돌더라. 가끔은 아직도 '내가 군인이 되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한다"고 했다. 배우로서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그는 "어떻게 보면 배우가 가진 특혜라고도 할 수 있다. 간접적 경험이지만 다른 직업에 내가 완전히 빠져들 수 있는 기회이지 않나. 아직까지는 전문직 역을 맡아본 적 없지만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했다.

김유정은 이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연기하고 있었다. 그는 "연기를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고 위로해주는 거다. 그렇게 봤을 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대중들, 팬들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크게 교류하고 있었다는 걸 최근에 크게 느꼈다. 관객들, 대중들, 팬들이 가깝게 있다고 느꼈다. 옆에 있는 느낌이다. 전에는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직접적인 인간관계로 느껴진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또 다른 아역들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본 김유정. 그는 신기한 경험으로 "제 아역이 생겼을 때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고 꼽아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현장에서 제일 사랑하는 존재다. 제일 큰 사랑을 드리고 싶다. 뭉클함이 있다. 내가 경험했던 순간들이기 때문이다"며 미소 지었다.

부산=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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