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얼굴'의 주인공 박정민을 만났다.
'얼굴'은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인 아버지 임영규의 아들 임동환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의 백골 시신 발견 후 그 죽음 뒤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다.
박정민은 1인 2역을 맡아 아버지 임영규의 젊은 시절, 아들 임동환의 현재를 연기했다. 젊은 임영규는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도장을 파며 성실히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임영환은 어머니가 백골로 발견되면서 어머니 죽음의 진실을 찾기 시작한 아들이다.
박정민은 1인 2역을 먼저 제안했다고. 그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효과적일 거 같았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아들 역할을 주셨다. 아버지 역에는 권해효 선배님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젊은 아버지는 아들 역 배우가 하면 어떨까 싶었다. 영화적으로 봤을 때 재밌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이어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면 젊은 아버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제안했다기보다 젊은 아버지 역의 배우가 정해져 있는지 여쭤봤다. 감독님이 제 의도를 간파하고 '1인 2역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 '제 말씀도 그겁니다'라고 했다"며 웃었다.
박정민은 이번 작품에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그는 "우선은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 (출연료가) 얼마인지 들어보니 '마음 쓰는 게 더 예뻐 보이겠다'싶더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이 돈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는 거보다 '회식비라도 하셔라'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잘 보이고 싶었다. 이왕 도와드리는 거 화끈하게 도와드리는 게 좋겠다 싶었다"며 웃었다. 러닝개런티로 계약한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다. 스태프들까지 해서 지분을 좀 나눴을 거다"라고 답했다.
독립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평균 제작비는 3억원. '얼굴'은 그보다도 적은 2억원이 들었다. '얼굴'은 개봉 5일째 35만명을 넘게 모았고, 이미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또한 이 작품은 13회차에 걸쳐 찍었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박정민 출연작 '하얼빈'은 63회차로 촬영됐다.
박정민은 "'동주' 때가 생각났다. 당시 강원 고성에 가서 3회차를 찍었다. 그때는 하루 촬영 시간 제한이 없던 때여서 3일간 밤새 가며 서른 몇 시간을 찍었다. 이번에는 극 중 방직공장 앞 세트에서 이틀 동안 주야로 엄청 찍었다. 돌이켜보면 어디서 어떻게 찍었는지 신기하다"고 회상했다.
소규모로 촬영에 박정민은 활동 초반 시절이 떠올랐다고. 그는 "현장에 조명감독님, 촬영감독님, 동시녹음 기사님이 등 감독님들이 막내 하는 일까지 뛰어다니면서 하더라. 그러니 배우들도 앉아있기가 뭐한 거다. 뭐라도 도와야 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스케일 큰 영화에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제작 환경이 당연시 여겨지는 업계에 '얼굴'의 작업 방식과 규모는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박정민은 "제작 환경을 잘 모르는 제가 말하긴 건방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 생각한 바는 있다. 영화 제작 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며 지금 극장 환경에 맞춰가야겠구나 싶더라"고 말했다.
이어 "'얼굴'은 저와 연상호 감독님이 그동안 쌓아온 마음들 덕분에 가능했던 것도 있다. 사실 이 정도 예산은 말이 안 되는 거다. 저도 돈을 안 받고 했다. 나중에 잘 되면 같이 행복하자는 마음으로 한 거다. 감독님은 자기가 정말 해보고 싶은 얘기를 큰 자본의 논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온전히 해보고 싶어서 이 형식을 취했다고 하더라. 현장에서 더 신나 보이는 느낌도 있었다. 자기 회사 돈이니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잖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해보자라고 하고 시작한 거다.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감독님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움직인 거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이 영화가 영화 제작 환경을 완전히 뒤엎을 순 없겠지만 누군가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나쁜 시도는 아닌 거 같다"고 전했다.
'얼굴'은 지난 11일 개봉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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