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을 구성하는 무수한 입자들
이름이라는 족쇄로부터
뭉뚱그려진 형태
이름이라는 족쇄로부터
뭉뚱그려진 형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가 아닌가 싶지만, 문장의 속뜻을 파헤쳐보면 어딘가 묵직한 느낌이 든다. 인간의 삶의 궤적을 압축한 이름은 영원히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영화 '한 남자'(감독 이시카와 케이)는 서로의 삶에 개입하기 위해서 혹은 이전의 삶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이름을 지운 이들의 처절한 생존기다. 초반부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그려진 액자가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액자 속 남자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지만 역시나 뒷모습으로 그려진다. 순간 액자 앞으로 같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스치듯 지나간다. 의미심장한 초반부 장면에서 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드러나지 않는다. 모두 동일 인물인 것처럼 뭉뚱그려진 형태는 '나'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명명하는 듯하다.
남자는 다이스케(쿠보타 마사타카)라는 이름이 적힌 명함을 리에에게 건네주고, 명함이 없는 리에는 종이 위에 자신의 이름을 꾹꾹 눌러 담아 전달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묻는다. 누군가의 이름을 묻는다는 것은 지나온 삶을 나누며 다가올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딸아이의 죽음으로 지난한 시간을 보내오던 리에에게 다이스케는 죽은 아이의 이름을 묻고 함께 애도하는 과정을 보낸다. 딸아이의 죽음과 함께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다는 리에는 아들 유토와의 일상을 다이스케와 함께한다.
그간 다이스케라는 외피를 덧씌우고 정체를 숨겼던 남자의 진짜 정체와 이름을 알고자 한 리에는 변호사 키도(츠마부키 사토시)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의문의 남자 X의 흔적을 쫓는 키도의 첫 등장은 이시카와 케이 감독이 '한 남자'를 특정한 인물 X에게만 적용한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착잡한 얼굴로 비행기의 창가 유리창을 바라보는 키도의 얼굴은 환한 빛이 감싸 안고 있다. 창가를 바라보던 키도는 이내 빛을 인식하고는 불편한지 창문을 닫아버리고 만다. 츠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한 키도는 빛보다는 음지에 닿아있는, 어쩌면 X와 닮아있는 인물이다. 재일교포 3세로 아내의 집안에서는 은근한 무시를 하고, 자신마저도 일본인이지만 일본인이 아니라고 불리는 자신의 상황을 껄끄럽게 생각한다.
'한 남자' 8월 30일 개봉. 122분. 12세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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