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평론가가 추천하는 이 작품]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태양의 소녀들'입니다.
'태양의 소녀들'은 2014년 8월, 극단주의 무장조직 IS에 참극을 당한 야지디족 여성들이 직접 총을 들고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 영화는 IS로부터 포로로 잡혔던 여성들이 극적으로 탈출한 후 그들과 직접 맞서기 위해 총을 들 여성 전투 부대 '걸스 오브 더 썬'의 이야기를 프랑스 종군기자의 시선으로 담아 세상의 억압과 차별에 굴복하지 않는 뜨거운 용기를 고스란히 전달해줍니다.

'태양의 소녀들'이라는 부대 이름으로 모여든 여성들은 하나같이 슬프고 끔찍한 사연을 갖고 있다. 대장인 바하르는 본디 프랑스에서 공부한 변호사이다. 그녀는 고향에 돌아와 단란한 가정을 꾸렸는데 친정집에 나들이 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ISIS(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 무장조직에 의해 아버지와 남편이 무참히 총살당했고, 아들은 전사로 키워지기 위해 '새끼사자학교'로 끌려갔으며, 바하르 자신은 2년 동안 성노예로 살다가 겨우 탈출했다. 탈출한 바하르는 야지드 족 군대에 자원입대했는데 적들과 싸우다보면 언젠가 아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영화는 그녀의 여정과 현재 벌어지는 전투를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이라크의 야지드 족은 크게 보아 쿠르드 족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의 거주지역을 ISIS가 점령하면서 대대적인 인종청소가 잇따라 5000명 이상의 남자들이 며칠 사이에 죽었고 7000명의 여인들이 잡혀가고 말았다. 야지드 족의 종교가 이슬람 정통신앙에서 벗어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이로써 야지드 족은 삶의 근거를 잃었고 결국 바하르 같은 여인들이 총들 들게 된 것이다. 이들의 전쟁에 프랑스 여기자 마틸드(엠마누엘 베르코)가 관찰자로 동행한다. 마틸드는 전장을 떠돌아다니느라 오랫동안 딸을 보지 못했고 폭탄 파편에 맞아 한쪽 눈까지 실명한 상태다.

야지드 부대와 대치하고 있는 마을은 한 때 바하르가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ISIS의 손아귀에 넘어간 상태다. 외곽에서 마을 내부로 통하는 터널이 있기는 한데 적들이 설치한 지뢰 때문에 감히 접근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오늘 사로잡은 포로의 말에 따르면 마을에 '새끼사자학교'가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니 적을 섬멸하고 아이들을 구하려면 터널을 통과해 선제공격을 하는 게 가장 좋은 작전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양의 소녀들'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앞뒤를 재며 꾸물거리는 남자들의 판단만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혹 아는가, 바하르의 아들이 그 곳에 잡혀있을지.

'태양의 소녀들'을 인권·고발 영화에 한정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전쟁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전투를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선두에 선 여전사들이 어떻게 적들을 섬멸하는지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바하르와 태양의 소녀들은 글자그대로 엄청난 용기를 보여주었다. 전쟁영화로도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무기 상에 팔려간 여인들을 바하르가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시키는 장면이 특히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 과정에서 심지어 어느 여인은 출산까지 한다. 주인공 바하르 역을 맡은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유난히 눈에 익었다. 그래서 살펴보았더니 아담 드라이버가 나온 '패터슨'(2016)과 부산영화제 초청작이었던 '어떤 여인의 고백'(2012)에서 만나본 적 있었다. 좋은 얼굴에 연기력도 상당히 뛰어난 배우다. '태양의 소녀들'에서 적역을 맡았다.

'태양의 소녀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 'Les filles du soleil'에서 'Les filles'는 '소녀들'보다 '딸들'이 적합한 번역인 것 같다.
모든 여성과 생명과 자유의 시대를 위하여!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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