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평론가가 추천하는 이 작품]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욕창'입니다.
'욕창'은 어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이 그간 감추고 있던 각자의 욕망과 상처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가정 속에서 식구들의 아픔을 차분하고 정교하게 그려냈습니다.

'욕창'은 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작품이고 설정도 그렇게 별나지 않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창식(김종구 분)은 힘들여 장만한 단독주택에서 연금으로 살고 있다. 창신의 부인 길순(전국향 분)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시시때때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것은 물론 밥까지 떠먹여줘야 한다. 그래서 중국동포 수옥(강애심 분)을 가정부로 들여야 했다. 자식 셋 다 결혼했고 맏아들 문수(김재록 분)는 과일가게를, 지수(김도영 분)는 안정된 가정의 주부, 그리고 막내아들은 미국에 살고 있다. 자리에 누운 길순 때문에 우울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는 가족이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 속 인물들 모두는 내가 한 번 이상씩 만나본 적 있는 사람들이다. 나의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10년 이상 자리보전한 채 떠먹여주는 밥을 드셨고, 외삼촌은 대기업에서 은퇴한 후 내내 무료한 삶을 사셨다. 그저 기원에 나가 앉아있는 게 전부였다. 그런가 하면 어떤 선배는 황혼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히 동생에게 큰 재산을 물려준 선친을 원망하고, 보기에 하도 답답해 '그렇게 서로 무심할 양이면 차라리 헤어지라'고 충고한 친구 부부도 있다. 그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아마 '욕창'과 같은 영화가 될 것이다. 배우들 스스로 소회에서 밝혔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다 눈물겨운 데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욕창'은 일상성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한 인물, 내 인생에서 중국동포 여성을 본격적으로 만나본 적은 없으며 그저 이런 저런 무성한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기껏해야 식당에서 손님과 종업원으로 만난 정도였다. 그런데 수옥 역할을 한 강애심은 정말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사투리며 행색이 영락없는 중국동포였다. 특히 불법체류자 처지에서 종구의 낯설고 무례한 제안에 흔들리는 모습과 표정은 가히 일품이었다. 강애심은 비록 영화는 몇 편 출연하지 않았지만 연극계에서는 이미 상당한 이름을 가진 배우다. 그녀의 관록이 아침 햇살처럼 다가왔다.

거기에 덧붙여 '실력 있는 조연급 배우들의 영화'라는 자평도 맘에 와 닿았다. 본디 배우란 배우 자신이 아니라 배역으로 설정된 인물의 성격을 정확히 표현하는 데 승부를 걸어야 한다. 말하자면 배우들의 인물 이해가 영화를 감상하는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욕창'이 만족스러운 영화라면 그런 이유, 곧 다섯 배우의 내공 덕이다. 요즘 잘 나가는 배우들 중에 극중 인물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데 힘을 쏟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하는 말이다. 그런 연기는 보다보다 못해 이제는 지쳐버렸다.
'욕창'이 수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관객 기록을 보니 절로 맘이 저려온다. 코로나19가 하루라도 빨리 끝나야한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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