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기는 어렵지만 뜨고 나서 관성에 빠지기는 쉬운 것이 방송이다. 월요일 심야 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역시 그 함정으로부터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종종 예상치 못한 데서 ‘한 방’을 터뜨리며 자기 위치를 단단히 다진다. 90년대를 휩쓴 스타였지만 요즘은 TV에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 류시원, 김원준, 김진표, 윤정수가 출연한 어제의 ‘자아도취 클럽’ 특집은 인트로부터 그들의 ‘자뻑’ 이미지를 위트 있게 소화하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부드러운 미소천사 왕자님 이미지로 어필했던 류시원은 친구들에겐 한없이 까칠하고 권위적인 보스 기질을 드러내며 토크의 주인공으로 떠올랐고 설정 샷을 사랑하는 또 다른 왕자님 김원준, 은근히 반항적인 막내 김진표에 술자리 시비 수습 전문이자 ‘류시원의 집사’ 윤정수가 적절히 캐릭터를 분담하며 90년대 캠퍼스 드라마의 15년 후 속편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뚜렷한 성격들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자아도취라는 제목 때문”이라며 적절히 다독이는 유재석과, 일본 활동시의 이름을 묻자 살짝 쑥스러워하며 “저는 그냥, 프린스에요”라고 답하는 류시원을 향해 진심을 담아 “왜 이러세요!”라고 외치던 김원희 역시 이 ‘신기한’ 친구 집단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심정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래서 다른 게스트들이 자신에 대해 폭로할 때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류시원은 그동안 출연했던 어느 프로그램에서보다 흥미롭고 매력 있는 인물로 보였다. “있는 그대로의 저를 에서 보여주고 싶네요”라던 류시원의 초반 각오는 실로 적절했던 것이다.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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