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활동한 예능인은 제법 많다. 그 중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려본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는 몇 손가락 안에 꼽을 것이며, 2010년에도 최고의 위치를 유지하는 건 결국 이경규 뿐이다. 이것은 한국 예능의 2강인 유재석과 강호동도 획득하지 못한 그만의 영역이다. 과연 무엇이 그를 2010년 현재에도 ‘핫한’ 존재로 만드는지, 또한 그것이 엔터테인먼트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가 점검해본다. 여기에 그와 함께 했던 PD들의 증언과 그의 예능 테크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예능의 정석, 그리고 상승과 하락의 포물선을 그린 그의 인생을 재구성한 픽션을 더해 이경규라는 텍스트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이해를 도모한다.과거가 기억과 기록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1991년 이전의 이경규는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얼마 전 KBS ‘남자의 자격’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이경규 본인이 커리어의 굴곡을 이야기할 때조차, 그 시작점은 1991년이다.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해 1991년 MBC () ‘스타초대석’과 ‘몰래카메라’를 통해 당시 일간지로부터 ‘데뷔 10년 만에 햇빛’이라는 평가를 받기까지의 10년은 말하자면 일종의 선사시대다.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시대. 그 오랜 시간의 기다림으로 역사의 시대를 연 시대. 하지만 이경규는 앞서 언급한 2010년의 강연에서 눈알을 굴리는 개인기를 보여주며 선사시대의 유물을 현재진행형의 도구로 사용한다. 심지어 효율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피가 돌고 숨을 쉬며 움직이는 화석이다. 이경규가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라는 텍스트 안에서 거론되는 중요 인물이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텍스트가 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최고이기 이전에 유일무이한 존재

이러한 변화의 여러 실팍한 지점 중, 인간 이경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만 예능인 이경규에게는 외도였던 영화 의 실패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하지만 “당시 강남에 빌딩을 살 수 있는 5억이라는 돈을 날린” 이 엄청난 금전적 실패를 스스로 희화화하며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개그 카드로 활용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즉 앞서 말한 변화의 방식이 예능인으로서의 내공을 꾸준히 갈무리하는 과정이라면, 실패한 영화인의 이미지를 예능인 이경규에게 덧씌우는 것은 개인적인 서사를 캐릭터로 구축하는 과정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족족 자신의 능력치를 채우는 예능인은 이경규 외에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서세원이 제작한 영화 의 성공에 자신의 실패를 대비해 웃길 수 있는 예능인은 이경규 뿐이다. 즉 이러한 개인 서사를 통해 이경규는 최고이기 이전에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아마 그의 인생 최고의 정점이라 할 수 있을 코너가 그의 이름을 주어로 한 ‘이경규가 간다’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분명 한밤중에 신호등 지키기, 정지선 지키기 같은 캠페인을 중심에 둔 ‘이경규가 간다’의 공익적 성격은 김영희 PD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익성 예능이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이경규가 실제로 그런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앞서 말한 방식으로 개인적 서사를 구성하며 인간 이경규와 예능인 이경규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렸다. 때문에 양심 냉장고를 선물하는 이경규는 단순한 코너 속 캐릭터가 아닌 공익 활동의 전도사가 될 수 있었다.
이경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때문에 최근 그가 KBS ‘남자의 자격’을 통해 성공적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에 안착한 것 역시, 한 예능인의 부활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의 첫 전성기인 시절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그는 90년대 예능과 21세기 리얼 버라이어티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이경규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고의 인기도 누려보고, 위기론 때문에 어려움도 겪었다. 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서사를 자신의 캐릭터 안에 품고, 이는 그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 ‘아직도’ 유효한 90년대 정서에 대한 반가움을 일으킨다. 이것은 향수가 아니다. ‘돌아온 몰래카메라’가 과거 영광으로의 회귀처럼 느껴졌다면, ‘남자의 자격’ 1주년 기념으로 이경규를 속인 24시간짜리 몰래카메라는 이경규가 상징하는 90년대 예능을 현재진행형의 웃음으로 만들어냈다. 결과론일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경험을 능력적으로 또한 서사적으로 품어가는 이경규의 방법론 안에선 몇 년 전의 부침조차 오히려 현재를 위한 힘이 되고 있다. 그래서 2010년의 이경규는 그 자체로 누적되고 발전해온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30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tvN , KBS 등 신규 프로그램에 계속해서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그 왕성함이 여전히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앞으로 30년은 더 방송을 해 먹겠다”고 공언하는 이 예능의 달인을 통해 앞으로 진행될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어떤 흔적을, 그리고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까.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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