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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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있었죠. (조)여정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숨을 곳이 없다는 건 명확했어요. 하지만 이 대본을 받고 '내가 이걸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걱정보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어요. 두려움보다 설렘과 기대가 컸죠."

배우 정성일이 자기 주연작 영화 '살인자 리포트'의 매력 포인트를 이같이 밝혔다. '살인자 리포트'는 정신과 의사이자 연쇄 살인자인 영훈(정성일 분)이 "나를 인터뷰해달라"고 특종에 목마른 베테랑 기자 선주(조여정 분)에게 요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정성일은 "긴장감이 쫀쫀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대본을 받고 점심시간인데도 안 멈추고 한 번에 다 봤다. 회사에 전화해서 이 대본이 다른 사람한테 안 갔으면 좋겠단 얘길 했다"고 말했다. 그는 "뒤가 계속 궁금한 이야기더라. 제가 배고픈 걸 잘 못 참는데, 점심시간을 다 써서 한 번에 이걸 봤다는 건 그만큼 호감도가 컸단 얘기"라고 전했다.

"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고 전개되는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영훈과 선주 간의 수 싸움도 매력적이었어요. 마치 체스, 장기, 바둑과 같이 선주와 영훈이 상대의 수를 알고 있냐 아니냐의 예측을 계속하는 것 같았죠. 둘에 이입해서 보다 보면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돼요. 그런 의문을 갖고 있다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일들이 생겨나는 게 재밌었죠."
'살인자 리포트' 스틸. / 사진제공=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살인자 리포트' 스틸. / 사진제공=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대본에 이끌려 선택했지만, 막상 연쇄살인범이라는 캐릭터를 마주하자 고민이 깊어진 정성일. 극 중 영훈이 살인을 시작하게 된 건 아내와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 때문인데, 정성일은 자신이 환자 측 입장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풀어갔다고 한다.

"제가 20대 때 누나가 의료사고 비슷한 일을 겪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병원에서 난동을 부렸죠. 다행히 큰일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나중에 집에서 '누나가 잘못됐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본 적 있어요. '내가 세상에서 아끼는 누군가를 해하는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점에 착안해 캐릭터를 풀어갔어요."
'살인자 리포트' 스틸. / 사진제공=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살인자 리포트' 스틸. / 사진제공=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영화는 정성일과 조여정의 연기 차력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열연을 펼치는 둘의 에너지로 가득 찬다. 정성일은 상대역 조여정이 1살 어리지만 '선생님'이라 불렀다고. 그는 "일찍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는 배우들이 있지 않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만큼 자기 노력과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존경심을 표했다.

"여정이는 한결같아요. 솔직하고 진솔하죠. 인간적인 면에서도 아주 존경스러워요. 현장에서 누군가 모난 행동을 하거나 삐죽대면 분위기가 안 좋아지기 마련인데, 그런 게 한 번도 없었어요. 서로 챙겨주고 웃기기 바빴죠. 여정이와 연기 얘기도 많이 했어요. 리스펙하는 마음으로 농담 반 진담 반 '우리 조 선생님'이라고 했어요. 정확히는 조 선생님도 아니고 '조 선상님'이었어요. 조상님과 선생님을 섞어서. 하하. 기분 좋게 받아 주더라고요. 좋은 친구죠."
정성일 / 사진제공=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정성일 / 사진제공=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 소니픽쳐스
2002년 데뷔한 정성일은 이번 작품이 첫 상업영화 주연이다. 그는 "인생에서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 주연을 한다는 것 기분 좋은 일"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만큼 부담도 된다. '신나 미치겠다' 이런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실 '와, 나 주연이다' 그럴 줄 알았는데, 나이 먹고 해서 그런지 약간 덤덤하더라. 10년만 젊었어도 어디 가서 소리 지르고 그랬을 것 같다. 늙었나 보다. 모든 것들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시기인 것 같다"며 웃었다.

무명인 길었던 정성일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를 통해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그는 "'더 글로리' 끝나고도 쿠팡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얼마 전 예능에서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저 지금은 여유롭게 산다"며 웃었다.

"대단한 부를 가진 건 아닌데, 방송에서 알바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그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것도 사실이에요. '더 글로리' 전에 살기 위해 당겨쓴 것도 있었죠. 그전에는 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의 벌이였어요. 그렇다고 '더 글로리' 출연료가 대단히 큰 것도 아니었고요. 어쨌든 생활을 해야 하니까 당시에 알바를 계속했죠. 알바 끊은 지는 한 3년 됐어요. 지금은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어요. 서너 번 생각해서 샀던 운동화를 한두 번만 생각하고 살 수 있는 정도가 됐어요. 연기해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경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오디션을 안 봐도 된다는 사실이 좋아요. '나는 이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취업 면접을 몇천 번 했는데, 이제 오디션을 안 보고 제의받는다는 자체가 '이제 좀 살겠다' 싶어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된 느낌입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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