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수많은 신인들 중 배우 타이틀을 거머쥐는 이들이 그 가능성을 보이는 순간 말이다. 이는 비록 찰나처럼 아주 짧을 수 있다. 하지만 그조차 수많은 신인들 중 몇 안 되는 이들만이 보여준단 사실을 떠올리면 그 자체로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순간인지 알 수 있다. 아직 작지만 지켜보기에 충분한 네 명의 배우들이 남긴 실낱을 <텐아시아>가 기억하는 건 그래서다. 특히 이들은 가뭄이 들 정도로 눈을 번뜩이게 하는 이가 드물었던 20대 남자 배우 카테고리로부터 튀어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천천히 가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강한 끌림을 주고 있는 이들은 지금 어떤 길로 가고 있을까. 가장 먼저 2011년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데뷔한 후 지난해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까지 놀랍도록 빠르게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배우 성준의 흔적을 밟았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한 번 보면 잊기 힘들만큼 강렬한 그의 인상과 닮아 있었다.
이 배우가 자꾸 눈에 밟히는 건 2년이라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 외엔 불평할 기회도 없을 만큼 자발적으로 외부로부터 떨어져 있었던 성준은 자아를 키우던 남자였다. “옆에 누가 있는 게 싫었어요. 스트레스 받고. 예전엔 그냥 혼자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좋은 것만 보고 산 거죠.” 그랬던 성준이 어느 날, 극의 인물로 살기 위해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을 지웠다. “제가 아니라 그냥 지혁이고, 최군이고, 정훈이어야 했어요. 그래야 좋은 연기가 나오니까.” 현실을 닮은 가상공간에서 진짜처럼 말하고 웃는 것. 이건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아니, 마음을 먹는 순간 모든 게 가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성준은 “표현이 아니라 반응”하기 시작했다. 애써 무언가를 드러내기보다 대사만 외운 채 실제 현장에서 생기는 감정에 대응하게 된 것이다. 현실을 탓하며 도망가려는 사랑에게 “난 야망이 없는 남자야. 난 작고 소박한 삶이 좋아. 음… 아내와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 유지하면서 아이 함께 키우고 적은 돈으로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거. 난 그런 삶이 너와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여겼어”라며 수줍은 듯 말하는 정훈도, 반대로 “아직 부족하지만 제가 옳은 길을 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당당히 내뱉는 성준도 결국은 모두 설득시킬 수 있던 이유다.
소년을 지운 자리에 채워넣은 배우
지금 성준은 그의 말대로 “시작한 데서 다섯 발자국 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섯 발자국 ‘밖에’는 아니다. 성준은 가장 견고했던 자아를 유연하게 움직이게 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심을 발판삼아 마음대로 넓은 진폭을 그리면서. 그래서 배우 성준에게 거는 기대는 그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선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이 아닌 성준이 씹어서 뱉어낸 결과물을, 성준이 해석하고 탄생시킨 새로운 인물을 확인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뭘 하고 싶다는 건 중요하지 않대요. 어떤 선배님이 그러셨는데 배우는 나한테 맞는 작품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맞춰가는 거래요.” 성준은 가볍게 다른 사람의 말을 옮겨 온다. 하지만 그 말엔 더 자유롭게 자신을 지우고 극으로 뛰어들려 하는 그의 의지가 새겨져 있다. 서두르지 않으며 한 걸음도 헛되게 딛지 않는 배우 성준은, 그래서 앞으로도 비현실적일 것이다. 이보다 믿음직스러운 예감은 없다.
* 더 많은 사진은 월간지 <10+star> 3월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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