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리│작고 깊은 연못 하나
한예리│작고 깊은 연못 하나
이를테면 작은 못(池) 같은 인상이다. 귀를 기울여야만 온전히 들을 수 있는 조용조용한 말소리와 바짝 다가앉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 고요한 얼굴이 그렇다. 토크쇼에 출연했을 땐 긴장한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는 말을 건네자 “아하하, 아닐 걸요?”라는 대답과 함께 말간 얼굴에는 미소가 천천히, 동그랗게 파문처럼 퍼져 나간다. 그렇지만 짐작보다 더 단단한 한예리의 의지와 맞닥뜨리면 그 아래는 얼마나 깊은지, 혹은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감춰져 있는지 쉽게 상상할 수가 없다. “는 그동안 제가 해왔던 것과 달리 엄청나게 극적인 연기를 보여 드려야 했지만, 못하겠다는 걱정이나 두렵다는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좀 더 해야겠다고 밀어붙였어요, 스스로.” 끝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유순복은 에서 가장 뚜렷한 성장사를 보여준 인물이었고, 이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 건 한예리였던 셈이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탁구까지 “사람의 일이니까 할 수 있게 되겠지”라고 생각한 그의 담대함이 겁이란 걸 모르는 무모함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겁을 내면 다친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는 영민함이야말로 한예리의 힘이다.
한예리│작고 깊은 연못 하나
한예리│작고 깊은 연못 하나
그가 모르는 게 있다면 생후 28개월쯤 무용을 시작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발레와 현대무용, 한국무용을 섭렵하며 “한 획을 그을만한” 무용가가 될 줄 알았던 자신이 현재에 다다른 우연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친구들과 함께하는 과제 정도로 여기면서 촬영했던 첫 영화 로 덜컥 미장센단편영화제 연기상을 수상하고, 그 뒤론 와 , 등 그를 알아본 작품들을 꾸준히 만날 수 있었던 건 분명 놀라운 일이다. 한예리는 농담처럼 “이상하게 여기까지 잘도 흘러왔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제가 한 것에 비해서 많은 칭찬을 받고 있는 것 같고, 지금 이것보다 다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앞으로도 이만큼 큰 작품에서 좋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도 알고, 만나더라도 제가 잘 해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저 스스로 흔들리지 않으려고 해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는 감독에게든 관객에게든 결코 흔하지 않은 존재다. 아마 지금도 조용히 깊어지고 있을 이 배우는, 더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발견될 것만 같다. 수심을 가늠할 수 없는 잔잔한 수면은 사람들을 매혹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한예리│작고 깊은 연못 하나
한예리│작고 깊은 연못 하나
My name is 한예리. 본명은 김예리다.
1984년 12월 23일에 태어났다. 두 살 아래 여동생과 다섯 살 아래 남동생이 있다. 남동생은 가 개봉했을 때 를 보고 와서 “누나, 눈물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어”라고 하길래 뭐하는 짓이냐면서 때려줬다. 하핫. 나중에 를 보곤 “응, 누난 뭐….”라고 뜨뜻미지근하게 얘기하길래 또 때려줬다.
동생들이랑 몽골에 배낭여행을 가보고 싶다. 별이 쏟아질 것처럼 머리 가까이 있어서 되게 좋다고 하더라. 일정도 빡빡하지 않게 조정할 수 있고, 무엇보다 세 사람이 가면 일 인당 경비를 적게 들여서 갈 수 있다고 하던데….
원래 사진 찍는 걸 되게 싫어했다. 보통 ‘셀카’라고 하는 사진들을 보면 각자 잘 나오는 각도 같은 게 있는데 난 그런 게 딱히 없는 편이라서. 그런데 일 때문에 자꾸 사진을 찍다 보니 좋아해야 하겠더라.
배두나 언니와 tvN 에 출연했을 땐 다행히도 부담이 덜했다. 스태프분들이나 작가분들이 바로 앞에 계신 것도 아니고, MC 보시는 이영자 씨와 공형진 씨도 등을 돌리고 계셨으니까. 주인공은 두나 언니라 마음이 좀 더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방송 나온 걸 보니까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목소리 톤이 높고 말을 빠르게 막 뱉더라.
의 문현성 감독님이 “예리는 앞으로 많은 감독님과 싸워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는 부분이나, 정보 전달 차원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의미이신 것 같다. 감독님이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씀이긴 하지만, 당연히 나 역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북쪽 사투리를 쓸 기회가 몇 번 있었다. MBC 에서는 그냥 내 마음대로 북한말을 막 썼고, 영화 에서는 연변 사투리, 이번에는 함경도 사투리를 썼다. 연변 사투리는 “이 뭐이가?” 하는 식으로 말을 굉장히 많이 줄이고, 함경도는 ‘~함까, ~슴까’ 정도, 평양 쪽은 ‘~했습니’ 정도로 줄인다. 세 가지가 굉장히 다르다. 평양이 서울이라면 함경도는 부산, 연변은 제주도 정도랄까.
발성은 좋은 편인 것 같지만 발음은 미흡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발성이나 발음을 배우면 ‘쪼’가 생겨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넌 너대로 해. 뭘 배우려고 해. 그냥 현장에서 배워” 이런 말을 많이들 해주신다.
제일 처음 무용을 시작했던 건 태어나서 28개월쯤 됐을 때였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풍경이 있다. 되게 큰 유리로 햇살이 쭉 들어오는데 창문에 붙은 시트지의 그림자가 홀 안에 드리워지고, 내가 거기서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무용학원에 다녔는데 지방이다 보니 학원이 생겼다가도 자꾸만 문을 닫았다. 하하하.
몰랐는데 어릴 땐 생각보다 영화를 많이 봤더라. 아버지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나 , 같은 명작들을 어릴 때 이미 봤다. 사촌 언니나 오빠들도 많아서 초등학교 때 왕가위 감독의 영화도 많이 접했고, 장국영과 양조위, 왕조현한테 묻혀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금 자란 후에는 애니메이션으로 훅 넘어와서 이나 같은 것들을 봤다.
등산을 좋아한다. 도봉산 둘레길에서 북한산으로 넘어가는 것까진 해봤는데, 다시 도봉산 쪽으로 돌아오는 건 아직 못해봐서 그게 목표다. 만약 큰 산에 올라간다면 설악산이나 금강산을 가보고 싶다. 를 촬영할 때 백두산에 가서 도둑촬영을 했는데, 큰 산이 주는 기운이라는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다 보니 영화에서 자전거를 자주 탔다. 작년 12월 24일에 크랭크업한 영화 에서는 자전거로 내리막을 쭉 내려가서 차와 부딪히는 장면을 찍었다. 브레이크를 안 잡았더니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조금 무서웠다. 다른 분들이 “예리 씨, 그거 어떻게 했어? 무섭지 않았어?”라고 물어보면서 독하다고 하셨다.
그래도 잠수해서 3m 길이의 돌고래 세 마리와 촬영할 땐 힘들었다. 물은 너무 차갑고 숨은 안 쉬어지는데 돌고래들은 너무 빠르니까 무서워서 처음으로 감독님 앞에서 막 울었다. 감독님은 못하겠으면 말하라고 하셨지만, 그러면 촬영을 접어야 하니까 그 말은 안 나오더라. 지금 생각하면 좀 속상하다. 돌고래가 뭐라고. 걔네가 와서 날 물지도 않을 텐데.
과 를 같이 찍은 강진아 감독님하고는 만날 “우리 둘이 끝까지 남아야 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선댄스영화제 가야지!” 이러고. 하하하. 작품을 같이 했던 감독님들과 계속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윤종빈 감독님과 작품을 계속하는 하정우 씨를 보면 좀 부럽다. 빨리 그렇게 되려면 나와 감독님들 모두 힘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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