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가가 술렁인다. PD들의 이적 열풍 때문이다. MBC에서 여운혁, 임정아, 성치경 PD가 종합편성채널로 옮기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 KBS에서도 김석윤, 김시규, 김석현, 조승욱 PD 등이 역시 같은 이유로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 방송사 모두 간판급 예능 PD들이 종편행을 선택하면서 예능국이 동요하고 있다. – 2011년 5월 10일 시사IN Live
1991년, 민영방송 SBS가 출범할 당시에도 오락 프로그램은 방송의 가장 ‘핫한’ 전위에 있었다. 기존 지상파의 시청자를 끌어오기 위해 신생 채널이 총력을 기울인 건 예능의 강화였고, 20년이 지나 새로운 종합편성 채널이 준비 중인 지금도 이는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그 전위를 이끄는 주체다. 20년 전에는 자니 윤이나 이덕화 같은 스타급 MC나 심형래, 서세원 등 인기 개그맨의 이적에 방점이 찍혔다면, 현재 방송연예 시장 지각 변동의 주인공들은 예능 PD들이다. 연예인 대부분이 전속 계약의 족쇄 없이 지상파 3사와 케이블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유동적이지 못한 시장이 이들 공채 PD의 영역이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MBC 의 팬들은 김태호 PD가 종편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KBS ‘1박 2일’ 이명한 PD의 사의 표명을 각 연예 매체가 앞 다퉈 전하는 건, 분명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최근의 현상이다. 요컨대, 현재의 몇몇 예능 PD들은 자신들이 연출하는 프로그램만큼이나 ‘핫한’ 존재들이다.
더이상 일방 통행이 아닌 시청자와 PD

이것은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일시적인 해프닝이라기보다는, 각 프로그램의 세계관을 뚜렷하게 세우고 시청자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PD들의 필연적 제스처다. MBC ‘몰래카메라’는 웃기면 그뿐, 왜 ‘몰래카메라’여야 하는지에 대해 방송사나 제작진이 설명하거나 변명할 이유가 없었다. TV의 안과 바깥은 명확하게 구분됐고 프로그램과 시청자의 관계는 일방통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의 만듦새와 진정성에 대해 끊임없이 피드백하고, 연예인이 TV 바깥에서 보여주는 실제 모습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퍼져나간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MC몽이 ‘1박 2일’에서 하차했을 때, MC 강호동은 시치미를 뚝 뗄 수 없어 “이제 이 인원이 전부”라고 스스로를 희화화하기라도 해야 한다. 이런 균열을 봉합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이에 그럴싸한 하나의 세계관과 룰을 만들어야 한다. MBC ‘나는 가수다’ 김영희 PD의 하차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아마 TV에서 전달하는 것을 시청자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던 시대의 마지막 스타 PD일 그는, 자신의 얼굴을 카메라에 전면으로 드러냈지만 자신이 세웠던 서바이벌의 룰을 스스로 깨면서도 그것을 시청자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1박 2일’의 나영석 PD는 스태프 팀이 축구에서 지며 식사를 못 하게 되자 ‘스태프 전원 입수’를 걸고 출연진에게, 또한 시청자에게 기회를 부탁한다. 자신이 만든 가상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이제 PD들은 끊임없이 개입하고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예능 춘추전국시대, PD들은 더 뜨겁다

오락 프로그램의 붐과 스타 예능 PD의 등장이 함께 이뤄지는 것은 이러한 세계관의 확립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관은 다른 세계와의 차이를 통해 비로소 유일무이한 것이 될 수 있다. 때문에 확장 자체를 세계관으로 삼은 을 제외하면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예능이 아니었던 영역에도 깃발을 꽂고 있다. 앞서 20년 전에도 예능은 ‘핫’했다고 말했지만, 2011년 현재만큼 오락 프로그램이 방송연예계 전체를 압도했던 적은 없다. 대중음악 분야에 있어 MBC 에브리원 폐지보다 ‘나는 가수다’ 스포일러가 더 큰 이슈가 되고, 2010년 최고의 공연은 MBC 의 ‘쎄시봉 특집’이었다. 어떤 요리 프로그램보다 시청자의 허기를 자극한 건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준 ‘라면의 달인’이었으며, 이제 SBS 는 피겨 스케이팅을 중심에 놓은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쎄시봉 특집’을 가능케 한 신정수 PD의 기획 섭외와 라면 끓이기조차 차분하게 접근하는 신원호 PD의 기다림은 성공적 확장을 위한 전술이 된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피고 지는 예능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PD들은 각 프로그램을 이끄는 제장과 제후로서 이름을 드러낸 것이다. 아마도 종편행을 비롯한 이들의 이합집산을 통해 예능의 판도는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그 치열함 속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만난 PD의 시대처럼 또 한 번의 새로운 무언가를 보게 될 수 있을까.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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